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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따지지 못하는 분위기에 길들여져 있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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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따지지 못하는 분위기에 길들여져 있는건 아닌지

입력
2000.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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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과 꽉막힌 시어머니 사이의 싸움은 빨래 방망이 소리로 끝나기 일쑤였다.분명히 틀린 일인 줄 아는 새댁이 이치를 따져가며 시어머니께 설명하려 든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정통파 시어머니의 대응은 어떤가.

“그래 너 똑똑하다” 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 붓게 했다. 호되게 물동이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노련한 며느리들은 그 후 시어머니가 콩을 팥이라 하면 분명하고 속도 빠르게 “네”라고 대답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애꿎은 빨래 방망이만 불이 난다.

이런 일은 필자 세대까지 뿐이라 생각하던 어느 날. 옛 제자 서너 명을 집으로 불렀다. 모처럼 제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먹여 보내려 부산스레 준비를 마쳤다.

즐거운 식사 후, 당연히 이야기꽃을 활짝 폈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이 못내 불안한 못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안쓰러운 나머지, “체했니?” “화장실은 여기다.” “커피 줄까?” 등의 말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제자는 그저 불편한 표정으로 열적게 웃기만 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옆에 있던 제자가 데이트가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누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약속이 있다는 말을 내게 못했을까? 의문과 함께 내 마음 속에는 자책 비슷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나는 제자들에게 다른 일정이 있냐고 묻지를 못했을까’. 내가 모르는 새, 나 역시도 비슷한 시어머니가 된 것이 아닐까.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미국 킹스톤 대학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대학 미술과 교수가 왜 한국 학생들은 학점에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내게 물어 왔다. 대꾸해 줄 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학점을 잘 받아야 되니까, 한국 학생들은 교수가 콩을 팥이라 해도 따지지를 못하고 속앓이만 한다. 그렇게 고이면, 학문이라는 것은 썩는다.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 가득한 질문은 교수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질문에 대한 연구와 대화, 상호 자극 속에서 학문은 자라는 것이다.

세계로 나아갈 젊은이들이여, 분명한 의사 표시는 상대를 당황시키지 않으며 나아가 신뢰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설령 물동이를 질 때 지더라도, 당당하게 살다 갑시다.

안필연·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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