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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실패라뇨? 용가리는 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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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실패라뇨? 용가리는 건재합니다"

입력
2000.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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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인 1호 영화감독 심형래‘신지식인 1호’ 심형래(沈炯來·42)는 피곤하다. 지난해 7월 내놓은 ‘용가리’에 뒷 말이 많아서다.

‘신지식인 1호가 가문의 영광’임은 분명한데 생각만큼 사회가 아직은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한 시간 반 동안 마주 앉아있으면서 그는 내내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 기회에 자신과 용가리에 얽힌 ‘몰이해’를 씻어내야겠다는 듯 진지한 모습을 한 번도 거두지 않았다.

영화감독이나 제작자 보다는 ‘개그맨’으로 불릴 때가 더 좋다고 했지만 기자와 만나고 있을 때 심형래는 개그맨은 아니었다.

-용가리는 어떻게 됐나. 지난해 국내 개봉됐을 때만해도 곧 세계시장을 뒤덮을 것 같더니만 뒷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다. 대신 용가리도, 심형래도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실패라니? 제작비가 1,000만 달러 들었는데 거의 회수 단계다. 작년에 칸영화제에서 데모테이프(시제품)로만 272만 달러를 올린 것을 포함, 아시아 시장과 북남미 시장에 판권을 팔아 도합 900만 달러를 회수했다.

미국서는 올 12월 초 개봉되고 같은 무렵 일본에서도 도에이 영화사 계열 70개 극장에서 동시개봉 된다.

하지만 앞으로 비디오판권, DVD판권, CD롬 판권, 케이블TV판권, 위성TV판권에서도 돈이 들어오게 되어있다. 제작비는 문제가 아니고 순수익이 얼마나 될까만 생각하고 있다.”

"제작비 거의 다 뽑아내"

-그런데도 왜 실패했다는 말이 나오나.

“나도 모르겠다, 왜 그러는지. 한가지만 이야기 하자. 지난번 칸 영화제에서 용가리 배급업체 중의 하나인 미국의 MFI가 현지 고급호텔인 칼튼호텔 벽 한 쪽을 온통 용가리 포스터로 뒤덮고는 세일즈를 했다.

호텔 하나를 통째로 세 낸 것 같았다. 반면 우리나라 재벌급 회사가 운영하는 영화사는 행사장 안 조그마한 부스 하나를 빌려 자사 영화를 홍보했다. 용가리 배급업자가 괜히 그렇게 큰돈을 들였겠나. 해외에서 인정해도 국내서는 안 알아준다.

용가리는 그 자리서 900만 달러를 벌었는데 무시되고 겨우 10여만 달러에 팔린 국산영화는 국내 언론들이 크게 쓰더라. 이런 편견이 어디 있나.

LA타임스도 얼마 전 특집에서 용가리를 다루면서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제일 시원한 영화’라고 썼다. 미국 SF전문잡지인 ‘사이파이’도 ‘한국에서 이런 수준의 SF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 때문에 자신이 구설수에 오른다고 말했다. 마음대로 기대치를 정해놓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당사자를 비난부터 하는 우리 사회풍토가 문제라고 말했다.

“영화는 기획단계에서 판매된다. 제작자들은 기획단계에서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 2~3년 후에 시장에 내놓는다.

영화가 나온 뒤에도 수입국 형편에 맞춰 개봉일자가 정해지는데 여기서 또 1~2년 묵는다. 용가리가 해외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고 나를 욕한다면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말이다. 애를 낳고는 칼 루이스처럼 달리지 못한다고 욕을 한다면 말이 되는가.”

-용가리가 해외에서도 잘 팔리는 이유는 뭔가.

“주인공이 특정국가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본다.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공상을 토대로 만든 게 이유일 것이다.

일본이 오리지널인 고질라는 시리즈가 23편이나 나왔는데 해외 판권이 4조원이 넘는다. 특정한 문화와 국가와 관계없이 누구나 좋아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선 홀대, 해외선 인정"

-용가리를 크게 뜯어 고쳤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세계에서 용가리 같은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미국 몇 개 회사와 우리회사 뿐이다.

기술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고친 것은 세계시장에서 더 잘 먹히게 하려면 영화를 더 미국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우선 배우를 미국인으로 바꾸었다. 대사도 영어로 다시 녹음했다. 한 80%는 새로 만들었다. 그게 올 12월 미국서 개봉된다. 이렇게 만들면 10만달러 받을 것을 100만 달러 받는 효과가 있다.”

그는 영화를 팔기 위해선 영화의 미국화가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프랑스 영화도 좋은 게 많다. 북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좋은 영화가 나온다. 그래도 미국 영화가 아닌 외국 영화를 볼 때면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어색하거나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다.

그만큼 미국 영화의 문법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을 잡으면 다른 나라 시장을 잡기가 쉽다. 물론 그러면서 점차 우리 것을 늘릴 생각이다. 아직은 우리 것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SF영화에 왜 그렇게 집착하나. 무슨 매력이 있나.

“일본이 포켓몬스터로 얼마를 벌었는지 아나. 우리 돈으로 40조원이다. 그게 무슨 영화냐고 하겠지만 영화산업이란 그런 것이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회사가 삼성전자다.

수 만 명 직원을 가진 이 회사가 올린 순 수입이 4조원이라고 들었다. 포켓몬스터는 아이디어 하나로 40조원을 벌었다.

내가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수치를 대겠다. 작년 세계 영화시장의 규모는 1,600억 달러였다.

우리나라 총외채 1,500억 달러를 웃돈다. 그만큼 영화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그게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가장 해볼만한 사업이 영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SF영화는 부가가치 높아"

-앞으로도 ‘돈이 되는’ SF영화만 하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나라고 왜 정통 영화를 할 생각이 없겠는가. 지금 기획단계인 게 하나 있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것인데 지금 세계에 월남전 영화라면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같은 미국 영화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월남에서는 우리 군인들도 많은 피를 흘렸다. 우리 시각으로 본 월남전 영화가 있어야 한다. 물론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제목을 “아이 워나 고 홈(I wanna go home. 고향에 가고 싶다)이라고 지었는데 내가 이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소재도 좋은 데다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술이 우리회사와 미국 일부회사 밖에 없기 때문이다.

B52 폭격기가 네이팜탄을 터뜨리고, 정글이 화염에 싸이며, 팬텀기가 공중폭발 하는 스케일 큰 장면은 아무나 못 찍는다.”

-영화인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5년 내에 미국시장을 잡는 것이다. 5년 안에 내가 만든 영화가 미국 영화시장에서 관객동원 1위를 기록하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월남전 다룬 영화 기획중"

-무슨 근거로 가능하다고 보나.

“미국 시장 1위가 되려면 스필버그보다 재미있게, 스타 워즈를 만든 루카스보다 멋있게 만들면 된다. 그럴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기술이나 돈이 있냐고 묻겠지만 우선 기술은 이번에 용가리를 만들면서 입증된 것처럼 문제가 없다. 스필버그가 재미있고, 잘 팔리는 이유도 시나리오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영화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일병 구하기’같은 걸 봐라. 첫 전투장면이 얼마나 리얼한가. 이건 시나리오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서울 중심가가 일시에 폭파되면서 수천 개의 구멍에서 괴물이 쏟아져 나와 시민을 덮치는 시나리오는 웬만한 작가면 쓸 수 있지만 이 것을 영화로 찍는 건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나.

“돈 문제는 이렇게 이야기하자. 미국에서 고질라를 영화로 만드는데 1억7,000만 달러가 들었다. 내가 그 영화를 만들었다면 10분의 1도 안든다.

미국은 영화를 만드는데 인건비가 무척 비싸다. 배우 출연료도 몇 천만 달러씩 들고. 그밖에도 부대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미국서 용가리를 만든다면 1억 달러는 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비용이 들지 않는다.

좋은 시나리오를 미국에서 구해와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이무기’처럼 한국적 소재를 미국 작가에게 맡겨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여기서 찍는 방법도 있다.”

"신지식인 1호 사회서 인정안해 섭섭"

-신지식인 1호로써 보낸 지난 1년은 어떠했나. 무엇이 달라졌나.

“사실 나는 내가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부가 신지식인 운동에 대한 홍보효과를 노리고 나를 1호로 선정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이것을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TV광고 등 정부홍보물에 출연해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지식과 기술,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신지식인 모임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갔더니 나에게 사회를 보라고 하더라.

그 자리서도 나를 신지식인 보다는 개그맨으로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사회를 마치고 내려왔다. 신지식인 1호의 상징성을 인정하지 않아주는 게 정말 섭섭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과의 소송에서 패소했는데 소송내용은 무엇인가.

“재판에서 졌지만 승복하긴 억울하다. 복잡한 과정이 있지만 세종문화회관이 용가리에 대한 서울 강북지역 독점상영권을 주장한 것이 소송의 발단이다.

세종문화회관측은 내가 1,000만 시민이 있는 서울에서 독점상영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니까 독점상영권은 양보하겠으니 영화가 끝난 후 10억원을 달라고 했다.

다른 극장과 상영계약을 해놓은 상태여서 우선 계약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영화가 끝난 후 3억5,000만원을 주었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였다. 나머지를 갚으라는 게 이번 소송의 내용인데 어쨌든 내가 졌다. 계약에 억지가 있었다는 내 주장은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항소를 할 것인가.

“당연하다. 돈 때문이 아니다. 문화창달을 지원해야 할 공기관이 독점상영권을 주장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는 계약서를 쓰도록 한 후 10억원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 비문화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 항소과정에서는 전후과정을 소상히 밝힐 것이다. 그래야만 같은 일이 다시 안 벌어진다. 행정당국이 문화인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다시 안생긴다는 말이다.”

▥ 약력

서울 여의도고 졸업 1975

고려대 식품가공학과 졸업 1981

KBS 개그 컨테스트를 통해 개그맨 데뷔 1982

첫 공상과학 영화 ‘영구와 공룡 쮸쮸’김독·제작 1992

국산 SF영화로는 처음으로 ‘파워 킹’을 82만 달러에 수출 1996

고려대 자연대학원 수료 1996

용가리 제작·개봉·수출 1999

신지식인 1호로 선정 1999

편집국부국장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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