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이뤄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회동은 이총재 요청으로 갑작스레 이뤄졌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당초 두 사람은 골프를 함께 칠 예정이었으나 이 지역에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클럽하우스에서 점심 식사만 같이 했다.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부총재 권철현(權哲賢) 대변인 주진우(朱鎭旴) 총재비서실장,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권한대행 등이 2시간 내내 배석, 두 사람만의 단독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회동에서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보장 등 밀약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억측을 차단하기 위해 권대변인 등이 식사 내내 동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은 1997년 대선이후 정국의 절대 변수로 작용해온 ‘DJP’구도의 변화 가능성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를 의식한듯 두 사람 모두 회동후 기자들에게 “정치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이총재는 “정치선배이자 고향선배이고 대학선배인데도 그간 적조해서 (골프를) 한 수 배우려고 만났다”면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일본정치 등을 화제로 이야기를 이끌었던 김명예총재도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모처럼 이총재를 봐서 좋았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총재가 “(골프) 날짜를 다시 잡자”고 하자, 김명예총재가 “필요하다면 식사도 해야지”라고 받은 것은, ‘DJ-JP-창(昌)’3자 사이의 물고 물리는 역학관계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총선이후 ‘자민련 왕따 작전’을 고집했던 이총재가 김명예총재에게 만남을 요청한 데 이어 2차 회동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제스처를 취한 것 자체가 ‘대(對)자민련 노선’의 터닝포인트를 암시한다는 분석이다.
김명예총재는 한발 더 나가 “정치에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말한 데 이어 “다음에 골프를 치게 되면 (교섭단체 문제도) 나올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등 캐스팅보트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서로 다른 속셈 때문에 이뤄졌고 지향점은 달랐을지 몰라도, 대선을 앞두고 복잡다단한 변화가 예상되는 향후 정국구도에서 만남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함축하면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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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의 회동을 ‘대화및 상생의 정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접근 정도및 속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균환(鄭均桓)총무는 23일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대립이 해소되면 국회운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면서 “두 분이 만났으니 국회의 숙제인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문제도 풀리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의 반응은 좀 달랐다. 김총장은“자민련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자민련을 국정공조의 파트너로 대한다는 민주당의 기본적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급속 접근을 경계했다.
당 일각에서는 자민련이 한나라당의 묵인 또는 도움으로 교섭단체구성에 성공할 경우, 자민련이 선택적 공조나 줄타기 정치를 시도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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