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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박정희기념관' 논란

입력
2000.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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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인근 공원에 세우기로 한 것이 논란을 빚고 있다.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는 건립 장소와 함께 대지 5,000평에 바닥면적 800평, 연건평 2,000~3,000평의 기념관 규모를 결정했다고 한다.700억원으로 추산되는 공사비 가운데 500억원은 모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00억원은 정부예산에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청와대 회의에는 이 기념사업회 회장인 신현확 전총리와 권노갑부회장, 최인기행자부장관, 고 건서울시장, 한광옥대통령비서실장 등 전·현 정부 실세들이 참석했다. 자리는 함께 하지 않았지만 이 사업회 명예회장인 김대중대통령(DJ)도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정희 살리기’에 정부가 나서는 일은 적절치 못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은 당시 정권의 이해 당사자가 수없이 생존해 있고,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건국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대통령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조국근대화의 영웅’으로 칭송 받는가 하면, ‘인권을 압살한 독재자’라는 비난이 공존한다. 경제개발의 공로를 말하기 전에 그는 독재에 항거한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법살(法殺), 또는 의문의 죽음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재심 기회마저 박탈한 채 서둘러 처형해버린 인혁당사건을 비롯, 서울법대 최종길교수·장준하씨 의문사 사건 등 독재 유지를 위해 저질러진 범죄들은 씻을 수 없는 그의 죄업이다. 그를 사상 최초의 전직대통령 기념관으로 모시기에 적절치 않은 까닭은 그밖에도 많다.

지금도 그 살벌했던 유신독재에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정부가 진상만이라도 밝혀줄 것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의 기념관 건립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경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박정희 독재의 유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그것이다.

민간단체인 기념사업회가 그들 나름의 힘으로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의 혈세가 지원되고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모금에 나설 것이 뻔한 실질적인 ‘정부사업’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해서 지금 당장 DJ가 해야 할 일은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아니다. 독재체제아래서 양산된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박정희독재와 탄압이 경제개발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논리가 맞다면, 백성의 안위를 지키려 일본에 의지했다는 이완용의 매국도 고심의 결단이었다는 변명이 가능해진다. 5공 신군부가 무정부상태의 혼란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서의 살상행위는 불가피했다고 강변해도 그 억지를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논리로도 정부 돈이 들어가는 박정희기념관은 정당화할 수 없다.

DJ가 박정희독재의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죽은 박정희와 개인적으로 화해하고 싶다고 해서 그의 기념관 건립에 나랏돈을 쏟아붓는 일은 명분에 어긋난다.

‘제일 큰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관용을 베풀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라는 논리라면, 이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선이요 오만이다.

정부가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집착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등돌린 영남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정권차원의 배려일까. 아니면 2002년 대선을 겨냥한 영남권 포섭전략일까. 만약 이런 추정들이 건립이유라면 착각도 이만저만 아니다.

영남권 민심을 되돌리려면 독식인사의 시정 등 등돌리게 된 원인을 제거해야지, 박정희기념관을 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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