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주요8개국(G8)정상회담이 23일 막을 내렸다. 개막일인 21일 한반도 정세 특별성명을 채택, 남북 대화를 강력히 뒷받침했지만 회담 전체로는 알맹이 없는 말잔치로 끝났다.정보기술(IT)문제를 G8정상회담 최초로 의제로 삼아 'IT 헌장’을 발표하는 등 의제는 가장 풍부했지만 각국 정상이 골치아픈 논의를 꺼렸기 때문이다.
첫번째 주요국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은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것만 조사하라, 중요한 문제가 다 거기 들어 있다”는 말을 남겼지만 20세기 마지막 회담에서도 주요 관심사는 빠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 경제의 위협 요소인 미국의 경상적자, 일본 경제의 현상 등에 대한 논의가 당사국의 반대로 생략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대 주제로 내세워진 IT 문제도 신기술의 독점·남용을 막을 '관리(governance)문제가 당연히 거론돼야 했으나 '활용이 우선’이라는 미국의 반대로 의제가 되지 못했다.
정치 분야의 논의도 한계를 보였다. 남북 대화나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러시아가 참여하는 이른바 '6자 회담’ 논의는 미일 양국의 반대로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지역 정세에서 국제 사회 복귀를 서둘고 있는 쿠바 문제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런 G8 정상회담의 부실화는 회담이 연례화, 여러 차례 사전 준비모임을 거치면서 빚어지는 해묵은 문제였다.
참가국 내부의 불협화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 이견이 생길 만한 의제는 빼고 합의가능한 것만 추리게 된다.
각국 정상의 국내정치 기반, 특히 의장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의 정치적 불안과 무사안일도 부실화에 한 몫을 했다.
대표적인 문제점을 포함, G8의 장래를 논의할 예정이던 22일의 1시간 20분에 걸친 오찬 회담이 거의 잡담으로 채워진 것이었다.
모리총리는 의제를 끄집어 내지 않았다.
오찬 시작과 함께 스모(일본씨름)팬인 자크 시라크대통령이 스모에 언급하자 모리총리는 유도·합기도는 물론 같은 '도(道)’자가 들어 간 다도(茶道)·서도(書道)로까지 얘기를 넓혔다. 그러다가 시간이 다 갔다.
더욱이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중동평화회담 일정을 이유로 G8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회담의 무게를 떨어 뜨렸다.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 등을 논의한 미러 정상회담, 일본측의 미군 주둔 경비 부담을 상징적으로 삭감한 미일 정상회담 등 양국간 회담에 오히려 눈길이 쏠렸다.
한반도 특별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그만큼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일 양국과 러시아의 관심이 높았던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문제는 미러 정상회담은 물론 미일·일러 회담 등에서도 중요 의제가 됐다. 이런 특별한 관심은 남북 대화를 촉진하고 있지만 언제든 제동장치로 변질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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