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공직사회를 바꾸고 있다.허위사실 유포, 여론재판 등 갖가지 부작용에도 불구, 인터넷 공간이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각종 사회비리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이버 아크로폴리스(시민광장)’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인터넷은 거의 공포의 존재. 직무관련 행위는 물론, 이전에는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사적인 공간에서의 은밀한 행위까지도 ‘익명의 목격자’들에 의해 언제 어떻게 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PC통신 게시판과 정부기관·시민단체·언론사 홈페이지 등에는 사회저명인사의 비리와 불합리한 관행을 폭로·비난하는 고발성 글들이 연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고위층은 사이버공포증
사이버 고발의 집중 표적이 되는 유명·지도층 인사들은 한결같이 “인터넷은 수사당국이나 감찰기관보다 더 무서운 ‘저승사자’”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변호사 출신 정치인 L씨는 한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뜬 글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시민 N씨가 “L씨측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소송이 자동 취하돼 버렸지만 피해보상은커녕 변호사비 1,000만원도 돌려주지 않는다”고 고발, 시민단체가 조사에 나서고 여론도 악화일로다. 여당 L의원도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금품살포와 부정선거 제보가 뜨면서 해명을 요구받은 상태다.
386정치인들의 ‘5·18 광주술판’ 사건도 인터넷이 숨은 고발자. 사건진상이 ‘퍼온글’ 형태로 급속도로 확산, ‘뭇매’를 맞았던 K의원은 “홈페이지에 순식간에 10만여명이 방문, 성토의 글을 띄우는 바람에 해명할 틈도 없었다”며 “사이버의 무서운 힘에 완전히 두손 들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모 국회의원은 “요새는 간혹 고급술집에 놀러가서도 완전히 심신을 풀어버리지 못하고 자리가 파할 때까지 언행에 줄곧 신경을 쓰게 된다”면서 “술취해 한 언행이라도 자칫 인터넷에 뜰 경우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모 대기업의 중역도 “접대를 해봐도 확실히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음을 느낀다”면서 “중앙부처의 모국장은 ‘안팎에서 늘 누군가에 의해 주시당하는 기분이어서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이버고발에 성역(聖域)은 없다
최근 한 언론사는 일선경찰과 기자간 불미스런 사건이 인터넷에 알려지자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비난 메일이 빗발쳐 어쩔 수 없이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모지청 선도위원을 고소하자 검사가 조사도 않고 무혐의 처분했다. 검사에 대한 징계처분 요구도 묵살됐다”는 J씨의 제보가 연일 청와대와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뜨자 당국이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최근 감사원 사이트에는 모 정부산하단체에 대해 “인사의 지역편중과 부조리가 심하다”는 내부직원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고, 경찰청 사이트에도 조직내부 문제를 지적하는 글들이 수시로 뜨고 있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처신을 잘못하면 홈페이지에 바로 비판의 글이 뜬다”며 “윗선에서 진상조사 및 시정지시가 떨어지므로 신경을 안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에는 매달 20여건의 사이버 고발이 뜨고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청와대, 감사원 등 정부사이트에도 각종 고발과 폭로성 제보가 급증하고 있다. “안티(Anti)사이트는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최근 법원판결 이후 기업체와 제품, 특정인물의 비리와 문제점을 폭로하는 안티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인터넷 고발' 전문가 시각
사회적 약자보호 민주주의에 기여
허위사실 유포 여론재판 부작용
최근 인터넷 공간에 몰아치는 사이버 고발에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사회권력에 대한 새로운 감시·통제 시스템’‘정보화를 통한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김병렬(金炳烈)비리고발센터소장은 “지금까지는 권력가와 기관의 비리를 알더라도 보복을 우려, 쉽게 고발하지 못했지만 인터넷이 사회적 성역(聖域)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고, 반부패국민연대 고상만(高相萬) 시민감시국장은 “정부와 기업체의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를 개선, 조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인터넷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경찰에 따르면 각종 게시판에 뜨는 글의 절반 이상이 근거없는 루머나 음해성 허위정보.
참여연대 김형완(金炯完) 협동사무처장은 “긍정적 효과만큼 익명성으로 인해 검증안된 무책임한 주장이 여론화하는 부작용도 크다”며 “고발자의 비밀은 보장하되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양근원(梁根源)팀장은 “명예훼손과 여론조작을 막기 위해 허위정보 삭제 등 자체 모니터작업 강화와 실명확보 방안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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