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계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금융기관간 ‘도피성 짝짓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현가능성이 극히 불투명한데도 강제구조조정의 소나기만 일단 피해보자는 식의 합병발표 및 지주회사설립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어, 시장질서교란과 투자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설익은 약혼, 예견된 파혼 합병발표 한달반만인 20일 공식적으로 갈라선 중앙종금과 제주은행. 양자간 합병선언은 감독당국과 사전조율없이 이뤄진 것으로, 합병발표 당시부터 성사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었다.
양쪽 모두에 가장 절실한 ‘자본확충, 재무구조건실화’프로그램이 너무도 불투명했기 때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당국자들은 합병선언 당시 “강제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한 급조된 합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부실기관끼리 만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라며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합병선언과 결렬과정에서 최대피해자는 수많은 소액투자자들. 1,625원이었던 중앙종금 주가는 6월8일 합병선언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2,140원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반토막도 못되는 835원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2분의1 감자(減資)까지 예정되어 있어 소액투자자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주은행 역시 합병발표후 2,4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현재 1,500원대로 내려앉았다.
■지주회사는 새로운 도피처? 광주은행과 평화은행이 중심이 되는 지주회사 설립논의가 현재 진행중이다. 나아가 다른 지방은행까지 편입시켜 ‘전국적 지주회사’를 만든다는, 꽤 그럴듯한 ‘그랜드 디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은행생존의 열쇠는 지주회사가 아닌 자본확충이 쥐고 있는데, 이 지주회사가 현실적으로 독자적 자본확충(대주주증자 또는 외자유치)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해당은행쪽에선 내심 자본확충 방법으로 공적자금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적자금을 받으려면 예금보험공사가 주도하는 지주회사 밑으로 들어와야지 왜 독자적 지주회사를 만드는가. 현재로선 중앙종금-제주은행과 별 다를 바 없는 것같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금융지주회사에는 들어오지 않고, 공적자금만 받아내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의 기승 현재 금융권에는 부실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합병 및 지주회사 방식의 ‘물밑 짝짓기시도’가 분주하다. 대형시중은행과 지방은행간 합병설도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 배경엔 강제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일단 아무 ‘파트너’라도 잡아보고,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나 대주주가 책임지는 증자보다는 공적자금이나 따내 독자생존을 모색하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인 것이다.
또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한스종금 사례처럼 신뢰할 수 없는 국내외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설익은 자본확충 방안도 남발될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합병을 하든, 지주회사를 만들든, 외자유치를 하든 장기적 경쟁력없는 금융기관은 결코 독자생존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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