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상흔인 비무장지대(DMZ)는 전장 248km, 폭 4km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3억평규모의 녹색지대다. 여기에 남북으로 각각 폭 5Km정도에 7억평규모의 민간통제구역이라는 준녹색지대까지 거느리고 있다.동해안으로부터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지방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산악지대 안에 많은 계곡과 분지, 북한강 한탄강의 발원지를 품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이 지난 반세기동안 GNP의 20~30% 를 소모하며 대치한 결과 형성된 지구상에 유례를 찾기 힘든 자연생태계의 보고다.
이 지역에는 10여종의 한국특산식물을 포함해 540여종의 식물이 분포돼있으며 하늘다람쥐 곰 수달 사향노루 산양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등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고 철원평야 일대는 두루미 기러기 백로 왜가리와 멧새류의 집단번식지로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역사의 현장이자, 지구상 유일무이한 자연생태공원이요,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평화의 공간이다.
이 비무장지대에 남북화해의 바람을 타고 섣부른 개발론이 일면서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단·물류기지·평화시 건설, 철도 및 도로 복원 등 남북통일에 대비한 비무장지대의 활용방안이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그 동안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이 금지됐던 민간인통제지역에서의 개발도 내년부터 제한적으로 허용됨에 따라 이 지역 땅값이 오르는 등 개발·투기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1997년 자연유보지역으로 지정돼 개발을 못하도록 돼있으나 환경보전대책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생태계기념관, 자연사박물관 등의 관광시설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정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죽음의 호수 시화호를 보면서도 새만금 간척사업을 밀어붙이는 정부가 비무장지대에서 어떤 개발사업을 벌일지 걱정이 앞선다. 개발론자들의 제의나 구상이 일시적으로 합리성을 갖춘 듯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인류의 자산으로 보존해서 생기는 이득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근시안적 파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동·서독이 통일된 뒤 서독사람들이나 유럽인들은 동독의 자연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데 충격을 받았다. 돈이 없어 개발을 못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은 동독의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통일 후에도 기존 공장을 개보수하거나 단지를 정리하는 선에서 개발사업을 펼치고 공장을 새로 짓더라도 환경친화적인 저공해산업을 유치, 동독지역을 유럽인의 자연공원으로 보존하고 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보존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통일에 대비해 철도나 도로 연결등 최소한의 복원사업은 불가피하겠지만 인위적으로 공단을 만들고 관광·숙박시설을 만드는 등의 자연파괴적인 개발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자연상태 그대로 놓아두는 것만이 비무장지대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인류의 자연유산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보존할 수 있다. “관광입국 100년대계의 핵심이 비무장지대에 있다.
에펠탑이 프랑스를, 후지산이 일본을, 그랜드 캐년이 미국을 상징하듯, 비무장지대는 바로 통일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는 비무장지대 자연보존연구회(www.dmzkorea.com)의 주장에 정부는 귀를 기우려야 한다.
자칫 통일의 열기에 휩싸여 비무장지대라는 지구상 유일한 생태보고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우는 제발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북통일이 중요한 만큼 비무장지대의 보존은 중요하다.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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