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사과방문을 거부한 서울시의 결정은 적절한 것인가. 한국 주둔 반세기만에 처음이라는 미군 책임자의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보도된대로의 형식과 절차였다면 옆구리 찔러 절받는 격의 사과는 안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서울시의 사과거부는 적절했다.수도권 2,000만 주민의 식수원인 한강에 독성이 강한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국민감정이 격앙되자, 미군당국은 일과시간이 경과한 19일 밤 서울시에 전화를 걸어 20일중 사과방문을 하겠다는 뜻을 통보해왔다고 한다.
낮 시간에는 말이 없다가 한밤중에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은 공적인 관례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또 사과의 주체가 주둔군 전체를 통할하는 주한미군사령관(대장)이 아니라, 육군만을 관장하는 미8군사령관(중장)이라는 점도 성의와 순수성을 믿는데 부족을 느낄 수 있다.
미군측의 통보 이후 마주앉은 실무자 협의에서 사과의 강도, 재발 방지책, 책임자 처벌문제 등에 팽팽한 의견대립이 있었다니, 처음부터 형식적인 통과절차로 넘어가려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군당국이 사과의 대상으로 서울시를 택한 것부터가 잘못된 발상이다. 독극물 방류의 피해자가 서울시민이므로 서울시장에게 사과하면 그만이라는 논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강은 서울시민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과대상은 당연히 한국인 전체라야 한다.
우리는 얼마 전 오키나와 주둔 미해군병사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났을 때, 미군사령관이 즉각 사과하고 미군의 심야외출 금지등 성의있는 대책을 내놓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도쿄에 있는 주일 미국대사가 일본식 큰절을 하며 사과한 사실도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 전에 없이 나빠진 것이 독극물 방류사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지촌 미군범죄 처리 문제로 자주 갈등이 빚어져 온 터에, 6·25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문제, 매향리 사격장 폭격훈련 피해 등이 겹쳤고, 최근에는 불평등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협상을 앞둔 시점에 독극물 방류사건이 가세한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일과 사건으로 인한 역사적이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헤아리지 않으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 된다.
미군당국은 21일 우리 국방부를 통해 미8군사령관의 서울시 사과방문 계획 취소를 통보했다고 한다. 우리는 미군당국이 사과대상을 한국인 전체로 확대하는 등 전향적 조치로 이해하고, 위기에 처한 한미간의 전통적 우호를 지키는데 성의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