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애절한 로맨스로 유명하지만, 그 당시 가치관으로 따진다면 가히 혁명적이다. 신분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바로 그 춘향전의 절정인 ‘어사출두’장면으로 치닫기 직전, 탐관오리 변학도가 큰 잔치를 벌인다. 이 때 걸인 차림의 이몽룡이 홀연히 등장, 시 한 수를 남기고 사라진다.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爻 萬姓膏)/촉루락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 ‘금 항아리의 좋은 술은 사람들의 피요, 옥 쟁반의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 촛불이 녹아 떨어질 때 민중이 눈물을 흘리고, 풍악소리 높은 곳에 원성 또한 높아간다’는 뜻이다.
세상이 급변한다지만 서민과 담 쌓고 지내기는 춘향전의 변학도나 요즘의 ‘높은 분’들나 모두 마찬가지다. ‘증시를 살리라’는 여론에 떠밀려 부랴부랴 정부가 내놓은 것중 제대로 된 것이 얼마나 되나.
‘높은 분’들이 미적거리는 사이 ‘금준미주 천일혈…’이라는 싯귀는 현실이 됐다. 주가는 폭락하고, 개미들이 발품팔아 투자한 공모주는 바닥을 헤맨다. 일관성 없는 정책에 실망한 외국인들은 보따리를 쌀 기세다.
금융구조조정, 남북관계 등이 제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어디까지나 서민들의 경제생활이 해결된 이후의 일이다. 순식간에 700선으로 밀려난 종합주가지수는 이몽룡이 변학도에 던졌던 준엄한 싯 구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철환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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