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드러나기 보다는 가려지는 존재다.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은 분명하되, 언제나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통해 반영되는 것이 순리다.특정사안에 대해 만부득이 전면에 나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여론을 설득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는 여론이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 실상과는 다르게 오해한다거나, 몰이해하고 있을 때에 한해서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가 국민들이나 언론에 잘못 전달돼 불필요한 오해나 몰이해된 부분이 생겼다고는 보지 않는다. 90%가 넘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보고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난 여론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정상회담 수행원이었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건주의식 또는 중구난방식으로 내뱉은 얘기들이 빚어내는 혼선이다.
분단 반세기만에 양쪽 정상이 손과 손을 마주잡고 분열과 대립 대신 화해와 공존을 다짐한 정상회담의 역사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의 시작’에 불과한 남북한 간의 화해무드를 침소봉대하거나 견강부회하는 일은 진정한 화해의 장정(長征)에 결코 소망스럽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도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수행원들의 잦은 설화(舌禍)는 정상회담 성과를 훼손시킬 뿐이다. 통일부장관이 불필요한 성과 부풀리기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이번에는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의 가벼운 입이 문제를 일으켰다.
황수석은 20일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에 앞서 ‘인공기를 걸었다고 검찰이 대학생을 사법처리하겠다면 회담을 그만 두고 돌아가라’고 나오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고 민감한 비화 하나를 털어놓았다.
파문이 일자 황수석은 “분위기를 재미있게 설명하다가 진도가 더 나갔다”며 문제발언의 취소를 희망했다고 한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다. 대통령의 수석비서관이 자기발언에 도취돼 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아니면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양 얘기했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이 정부의 관리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우리는 이날 강연이 외교안보수석이 굳이 나서야 할 만큼 중요한 자리였는지도 묻고자 한다.
조만간 예상되는 청와대 보좌진 개편 및 개각이 사람들을 들뜨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견해도 있다. 다시 한번 공직사회의 해이된 분위기를 다잡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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