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혼선과 해석을 낳았던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 중단 용의’ 발언의 대강 윤곽이 드러났다.21일 오키나와(沖繩)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앞서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방북 중 듣고 감지한 김 위원장의 의도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구체적 설명 내용은 미러 공동성명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보도진에게 회담 뒤 설명하는 형식으로 알려졌다.
이바노프 장관의 설명 요지는 다른 나라들이 북한의 인공위성을 대신 발사해준다면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할 태세가 돼있다는 것이다. 이바노프 장관은 ‘미사일 개발 중단’은 아니고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또 북한의 뜻은 독자적으로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미사일 기술을 자기들에게 달라는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미사일 발사 기술이 아니라 위성의 대리발사라면 일단 케네스 베이컨 미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북한이 우주 개발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협력하는 방안을 함께 탐색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과는 협상의 접점이 생긴다.
다만 베이컨 대변인의 ‘미사일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이란 조건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은 괴리가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 진행과정에서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시험발사는 중단하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북한의 산업 및 통신기술 수준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이 과연 그렇게 인공위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인가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핵개발 위험이 있는 흑연감속로를 국제적 압력에 의해 포기하면서 ‘국가의 체면과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전력생산을 위한 경수로제공이란 명분과 방법론을 찾아낸 것과 일정한 유사점은 엿보인다.
미사일을 포기하기 위한 명분으로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인공위성’을 협상용으로 내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바노프 장관이 “현재로선 시기상조”라고 토를 달기는 했지만 북한과 러시아간에는 이미 북한 인공위성의 대리발사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 기금조성이나 대리 발사국 선정 등에도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처럼 미사일개발에 대한 ‘보상성 대리발사’비용을 담당할 국제기구를 염두에 둔 듯한 인상이다.
아직 북한의 진의가 자신들의 육성으로 드러나지 않은 만큼 상세한 내용과 협상 및 실현 가능성은 27일로 예상되는 태국 방콕의 북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한편 미러 공동성명에 명시된 미사일 발사에 관한 양국 조기경보 센터 설립도 북한이 1998년 9월 ‘대포동 1호’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와 같은 우발적 긴장상황을 예방하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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