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맞아 정부와 민주당은 대폭적인 사면과 복권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남북 화해에 맞추어 국내적으로도 지역갈등과 정치적 대립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면·복권 대상자로는 특히 선거사범과 정치권의 뇌물사범도 포함될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원칙적으로 대통령이 결심을 하기에 달린 일이다. 그리고 사면·복권 대상에 따라 사법적 판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부패한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 제도의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잘못된 사면·복권은 정치권이 내세우는 명분인 국민화합에도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이같은 조치가 일부 정치인간의 화합을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의 화합은 오히려 깨는 것임을 정부와 여당이 아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계산 아래 이루어지는 비리 정치인이나 공직자, 부패한 경제인에 대한 사면·복권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그동안 화합을 이루어왔는지, 아니면 법적 정의의 실종과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켜왔는지를 보면 아는 일이다.
사면·복권의 명분 가운데는 언제나 빠짐없이 지역갈등의 해소가 들어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지역감정의 본질을 잘 모르는 판단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지역감정이 어디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가. 또한 지역감정 해소를 이유로 하는 사면·복권은 대다수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지역감정 해소를 이유로 특정지역 출신에게는 법적으로도 특별대우를 하려는 정치권의 계산이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는 것이다.
선거사범이나 뇌물사범의 경우 정치권이나 공직에서 영원히 배제시켜야 하는 것이 정치개혁과 부패척결의 첫걸음이다. 정치인의 경우 유권자가 선거를 통하여 심판하면 바람직하겠지만 우리는 아직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법적 심판을 통해서라도 이들이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사면·복권을 통하여 이들을 재생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에는 국민간의 화합은 커녕 법에 대한 냉소적 시각만을 키워왔다.
또한 선거사범에 대한 사면·복권은 현재 진행중인 4·13 총선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서도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이다. 불과 얼마전의 선거사범을 사면하고 복권하면서 4·13총선 과정에서 발생한 선거사범을 어떻게 사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겠는가.
이들도 내년 혹은 늦어도 다음 대통령 선거 즈음에는 다시 사면·복권되어 정치권 재진입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처벌이 정치적 탄압의 결과였다고 자기 변명을 늘어놓을 것은 뻔하다.
현재 한나라당은 4·13 선거사범 수사가 형평성을 잃었으므로 국정조사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이러한 선거부정 국정조사 요구가 이 땅에 공명선거 구현을 위한 차원에서라면 한나라당은 여권의 8·15 특사대상에 선거사범을 포함시키려는 계획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원칙을 세우고 관철하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일부의 반대가 있더라도 설정된 목표가 정당하다면 결국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국민여론을 빙자하여 소수에게 특혜를 주는 정치다.
더군다나 3·1절이나 8·15 광복절같은 민족의 기념일에 시행되는 이러한 사면·복권은 선조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바른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도 부족할 상황에서 계속 뒷걸음질치는 정치적 판단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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