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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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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엔 뭔가가 있다"

입력
2000.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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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는 이제 일종의 ‘장치 산업’에 속한다.엄청난 컴퓨터 그래픽, 어마어마한 세트. 1억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100만 달러를 들여 ‘푼돈’을 거두는 건 싫다.

서사극은 바로 이런 의도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진다. 이미 미래를 예견하는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화려한 스펙터클로 ‘과거를 상상하기’다.

세기말엔 퇴폐주의가, 세기초엔 보수주의가 유행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듯 이미 할리우드 시대극은 포문을 열었다.

고대 검투사 이야기를 다룬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미국 독립전쟁을 그린 ‘패트리어트’가 22일 개봉한다. ‘결혼 피로연’ 같은 아기자기한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중국의 이안 감독은 무협서사극 ‘와호장룡’을 만들었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하는 ‘코렐리우스 장군의 하프’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촬영을 마쳤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여준 화려한 전투 장면과 고대 검투 경기의 재현은 ‘벤허’를 가장 인상 깊은 시대극으로 꼽고 있는 관객에게 새로운 영상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많은 역사가들을 분노하게 하고 적대국으로 묘사된 국가와의 갈등을 야기한다. ‘패트리어트’에서 영국군은 나치를 방불케 하는 잔인성을 보인다.

영국의 언론들은 벌집을 쑤신 듯 난리법석이다. ‘글래디에이터’ 역시 입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국가에 충성할 목적이라면, 대대 병력을 몰살해도 좋다는 보수주의적 발상.

그러나 더 큰 논란거리는 역사를 빙자한 엄청난 폭력성에 있다. 시대극은 대부분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을 묘사하면서 악당을 처치하기 위해 무한대의 폭력을 휘두른다.

‘패트리어트’에서 멜 깁슨은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둘러 도살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프랑스 영화 ‘잔 다르크’에선 불붙은 포탄이 병사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으깨 버린다.

현대 액션물이었다면 ‘과장이 심하다’는 비난을 들을 법한 장면도 ‘옛날엔…’이란 변명으로 무난히 넘어간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할리우드는 시대극을 주류 영화의 ‘패션’으로 고수할 것이 분명하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연출하는 사실적 액션이 가진 상품성 때문에.

실화 바탕… 전장 뛰어든 부성애

▥ 패트리어트

멜 깁슨은 언제나 영웅이었다. ‘매드 맥스’가 일탈한 영웅을 보여 주었다면, 할리우드로 옮아온 이후 그의 모습은 좀 더 갖춰진 영웅이었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그의 영웅성은 정점에 달했다.

‘패트리어트(Patriot)’에서는 그가 토마호크 도끼를 든 ‘늪 속의 여우’로 변신했다. 1770년대 사우스 캐롤라이나. 잔혹하기로 소문난 프랑스군과 인디언에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벤자민 마틴(멜 깁슨).

독립엔 찬성하나 더 이상 싸우고 싶지는 않다. 그에겐 7명의 아이가 더 없이 소중하기 때문. 그러나 혈기왕성한 큰 아들이 자원입대하고, 결국 잔인한 영국군의 폭력에 둘째 아들이 죽음을 당하자 그는 전장에 나선다.

독립전쟁 당시 전쟁영웅 ‘프란시스 매리언’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었는데, 엄청난 물량을 동원한 것은 알겠으나 동어반복적 전투 장면이 매력적이지 않다.

‘용기를 보여달라’는 처녀의 웅변에 몸을 사리던 남자들이 모두 자원하는 대목은 비장하기보단 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독일 출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과 호주 출신 배우 멜 깁슨 등 ‘용병’들이 할리우드에서 외치는 ‘미국 만세’의 울림은 공허할 뿐이다. 22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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