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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大物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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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大物 신드롬'

입력
2000.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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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18평짜리 전세를 사는 미혼 회사원 조모(29)씨.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지만, 올 봄 중고 아반떼를 버리고 2,000만원이 넘는 EF쏘나타를 36개월 할부로 샀다. 조씨는 “차를 빼면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벌써부터 여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져 뿌듯하다”고 말했다.지난달 15평짜리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린 정모(30·회사원)씨는 “32인치 TV와 600ℓ가 넘는 냉장고로 인해 현관에만 들어서면 가슴이 답답하다”며 “아내가 우겨서 샀지만 뭔가 거꾸로 된 것 같다”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실속없이 외양만 쫓는 ‘대물(大物) 신드롬’이 되살아났다. IMF 사태를 계기로 한때 정착하는가 싶던 ‘합리적인 소비행태’는 이제 간 곳 없고, 저마다 분에 넘치게 허세를 부리는 풍조가 다시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있다. 대형가전제품과 중대형 승용차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가 하면, 60~100평에 달하는 대형아파트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아파트

지난해부터 불붙은 대형 아파트 열풍은 건설회사들마저 깜짝 놀랄 정도. D주택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짓는 38억~39억원대의 154평형 38세대는 아직 견본주택도 없이 소문만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20여세대가 예약됐다.

이달 초 분양된 69~80평형 서초구 방배동 D아파트도 다른 동시분양 아파트들의 미달사태 속에서 유독 1순위만으로 일찌감치 청약이 마감됐고, L건설의 동부이촌동 93평형(24 5,000만원)아파트도 26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였다.

올들어 서울에서 1∼6차 동시분양으로 공급된 아파트는 1만447가구. 이중 30평형 이하 소형아파트는 3,01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99가구에 비해 50.6%나 준 대신, 40평형 이상은 42.4%나 수직상승했다.

경기 분당의 회사원 김모(38)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파트 평수로 다툼을 하고, 비슷한 평형끼리 몰려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며 “요즘에는 건설회사들도 소형아파트는 별로 짓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S전자의 520ℓ급(180만~200만원대) 냉장고는 지난해 이 회사 전체 냉장고 판매량의 35% 정도에 불과했으나 올 상반기에는 63%나 됐다.

더구나 액정모니터가 달린 350만원대 대형 냉장고와 40인치 이상 프로젝션 TV 등 초고가 대형가전제품들은 없어서 못팔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L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300ℓ급 냉장고와 20인치 내외의 TV 등은 생산이 중단되거나 모델종류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가전제품 종합상가인 테크노마트의 박상후(朴相厚·33)차장은 “올해 상반기에 팔린 중·대형 냉장고는 지난해보다 60%, 대형 TV는 80%나 늘어났다”면서 “남의 집에 좋은게 있으면 나도 사야하는 ‘덩달이 구매’나 ‘과시형 구매’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승용차

배기량 2,000cc 이상 중·대형차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강남영업소의 경우 판매차량 대부분이 그랜저XG 2,500cc급 이상. 영업소 김규은(金奎恩·37)씨는 “지난해만도 1,500cc급이 주판매차량이었는데, 올들어서는 한달에 10대를 팔면 6~7대가 대형차들”이라며 “중·대형차 구입 손님들중에는 의외로 서민층으로 보이는 이들도 많아 놀랍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 현대자동차의 경·소형 승용차인 아토스, 베로나, 아반떼 판매량은 모두 합해 6만2,615대로 EF쏘나타 한 종류의 판매량 6만4,516대에도 못미쳤고, 대우자동차 역시 상반기 중·대형차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두배정도나 증가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남 의식않는 과소비 사회적 불행 부른다"

서울대 김난도(37·소비자학)교수는 “IMF이후 소득구조가 양극화하면서 등장한 신부유층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과소비를 일삼는 특징이 있다”며 “소비에 가치를 두는 젊은 층의 문화도 대물 신드롬에 한 몫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려대 성영신(심리학)교수는 “기본적으로 비교를 잘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결국 ‘좀더 크고, 좀 더 고급’을 찾는 소비의 악순환에 빠져들면서 개인은 물론, 나아가 사회적 불행까지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소비추방 범국민운동본부 박찬성(47)사무총장은 “신부유층들이 호화사치 소비패턴을 이끄는 바람에 일반 서민들까지도 이에 휩쓸리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곧 무역수지 흑자가 무너지고 우리 경제는 다시 위기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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