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하나, 사과 하나도 '브랜드'를 보고 사먹는 시대입니다. 이젠 과일에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마케팅이 필요합니다."뉴질랜드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키위 업체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의 한국지사장 김희정(32)씨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과일 장사'를 하는 여성이다.
회사 내 공식 직함은 '키위 마케팅 매니저'. 키위라는 '상품'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기 위해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판촉활동을 진두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이다.
과일을 재배하는 생산자부터 중간 상인,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재래시장의 청과 상인들부터 대형 할인매장 및 백화점의 식음료 구매 담당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그의 업무 파트너이다.
제스프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말. 호주 머독대(신문방송학과)를 나와 거손, 코래드 등 국내 광고 대행사에서 국제 분야 AE로 일하다 한 헤드헌터 업체의 주선으로 제스프리에 스카우트됐다.
제스프리 한국지사 설립과 동시에 한국시장 판로개척을 총지휘할 마케팅 담당 책임자로 채용된 것.
당시만 해도 IMF의 여파로 수입 농산물 판매가 급감하면서 관련 업체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던 때였는 데 김씨는 광고회사 출신답게 독특하면서도 다채로운 로드쇼와 홍보 이벤트를 직접 기획,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키위라는 낯선 과일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초록색 키위복장을 한 도우미들을 이끌고 길거리와 백화점, 재래시장을 훑고 다니며 시식행사 등을 통해 일반 소비자와 청과상인들에게 뉴질랜드산 키위를 홍보했고, 새벽마다 가락동이나 영등포 등지의 농산물 도매시장에 출근하다시피 해 도매상인들을 대상으로 현장 밀착 마케팅을 펼쳤다.
덕분에 한국담당 마케팅 매니저가 된지 불과 2년 안에 외국산 키위 가운데 제스프리 키위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98%, 연 매출액을 200억원 대까지 끌어올렸다. 제스프리 내에서는 이 같은 성공사례를 빗대 '(수입 농산물에 대해 배타적인)한국에서 팔리면 세계에서도 팔린다'는 캐치프레이즈까지 생겨났을 정도. 뉴질랜드 본사는 올해부터 한국뿐 아니라 중국 시장 마케팅까지 김씨에게 일임했을 만큼 그에 대한 신임이 남다르다.
요즘엔 주말마다 중국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등을 오가며 시장조사와 판촉 활동에 여념이 없는 김씨는 "과일 마케팅의 핵심은 빠른 판단력과 감(感)"이라고 강조한다.
"과일은 기후 등의 외부 변수 때문에 정확한 생산량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일반 공산품과 달리 제 때 안 팔린 제품을 마냥 창고에 재고로 쌓아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순간순간 판단과 결정이 빨라야 하고 일단 결정한 것은 추호의 미련도 없이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과일은 간식이라는 점에서 모든 스낵류 제조업체가 곧 경쟁업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는 그는 "과일마케팅 분야에 도전하려면 생산자인 농민들의 마음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하고, 대형 유통업체의 바이어는 물론 거칠기로 소문난 재래시장 상인들까지도 당당하게 상대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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