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지난 해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돼 있다.‘아주머니를 홀하게 또는 정답게 부르는 말’.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줌마’는 이 간단한 정의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말이 돼버렸다.
‘힘내라, 아줌마’ ‘아줌마가 집에서 빨래나 하지’ ‘IMF를 이겨낸 원동력, 한국의 아줌마’…. 도대체 누가 이 다양한 아줌마의 의미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올해 43세의 한 아줌마가 일을 냈다.
여기서 ‘아줌마’란 애들 어느정도 키워놓고, 남편 뒷바라지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문득 자신의 정체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전업주부로서의 아줌마다.
그 아줌마는 10년 전부터 가수 꿈에 도전해오다 지난 해 1월 자작곡에 노래까지 부른 CD를 냈고, 최근에는 이 과정을 이야기한 책까지 냈다. 전업주부에서 가수로, 이어 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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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꿈에 도전하다
이승희 지음, 베스트셀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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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씨. 어떻게 보면 보통 아줌마는 아니다. 남편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내과병원을 운영중인 개업의사다.
속된 말로 ‘의사 마누라’다. 소득으로만 보면 상류층 귀부인이다. 학력도 높다. 숙명여대 교육학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교육심리학과까지 졸업했다.
퍼머 머리에, 지하철 빈 자리에 염치 불구하고 앉을 것 같은,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아줌마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이승희씨는 역시 한국의 아줌마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부터 10년 전 일이다. 그이가 아침에 출근하며 저녁 메뉴로 설렁탕을 주문하기에 서둘러 슈퍼에 가서 사골과 양지머리를 사왔다.
최소한 8시간은 은근한 불에서 끓여야 제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가스불에 얹어 놓고 마냥 기다렸다.
종일 ‘설렁탕과의 전쟁’을 치르듯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준비해 두고 그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밤 9시가 다 돼 직장 동료들과 저녁 먹고 들어온다는 전화가 왔다.
혼자 식탁에 앉아 설렁탕에 밥 한 그릇 후딱 말아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왜 그리 속상하고 허전한지 자꾸 눈물이 났다.”
여러 음악학원을 다니며 착실히 공부를 한 끝에 CD를 내기로 마음먹은 1년 반 전 얘기도 있다.
“여보, 나 CD 제작해야 하는데 돈 좀 빌려줘. 내가 작사, 작곡, 노래까지 자급자족하니까 얼마 안들어.” “안돼. 당신이 좋아서 벌인 일이니까 당신이 끝까지 진행시키고 책임 져.” 이승희씨는 이날 밤새 울었다.
결혼 17년 동안 주부 노동의 대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여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이런 아줌마가 가수를 꿈꾼 지 10년 만에 CD를 내고, 이 CD 홍보를 위해 책까지 낸 과정은 생략하자.
“아줌마가 이런 데는 왜 왔어?”라는 음악학원생들의 이상한 수군거림, 자신의 음악공부 때문에 아들 기훈(17)과 딸 소연(15)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 ‘녹슨 머리’로 전공도 아닌 음악 공부를 하는 어려움 등이 그를 괴롭힌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1998년 2월 압구정동 성당에서 있은 금모으기 행사 때 김수환 추기경이 보는 앞에서 자작곡 ‘IMF(I'm fighting)’를 불렀고, 이 것이 CD를 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일은 기억해두자.
‘아줌마’ 이승희씨는 무엇이 가장 힘들었을까? 아니, 무엇이 마흔을 넘은 이 아줌마에게 ‘일상의 반란’을 일으키게 했을까?
그 ‘설렁탕 사건’이 있은 날, 이승희씨는 대학 시절 팝송 경연대회에서 탄 트로피를 창고에서 찾아냈다.
당시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를 멋드러지게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던 것이다. 대학 때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내 인생을 밝혀줄 막연한 상대를 꿈꿔왔지만 지금은 내 인생을 밝혀줄 ‘You’는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봤다.
“경제적 주도권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는 한 나는 경제적 의존을 하게 되고 경제적 의존은 정서적 의존을 낳는다고 봅니다.
정서적 의존은 다시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에 더 신경을 쓰게 하고 자율성과 주체적 선택을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3년 전 작고한 아버지도 생각났다. 무남독녀였던 자신은 아버지의 소중한 딸이었다.
그 소중한 딸이 이렇게 ‘살림기계’로 전락한 게 서럽고 또 서러웠다.
이씨는 기자를 만나 말했다.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아세요? 라디오를 통해 제 노래가 몇번 나간 다음이었어요. 제 통장에 저작권료 명목으로 3만 8,000원이 들어와 있는 거에요.
15번 정도 나갔다고 하니까 한 곡에 1,500~2,000원씩 쳐준 셈이죠. 아줌마가 만들었다고 음반사에서는 시장에 내놓지도 않았던 그 노래를, 사회에서는 이렇게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기쁜 노력의 대가였어요.”
그리고는 이 땅의 아줌마들에게 톤을 높여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비켜가고, 쉬어가고, 틈새시간 놓치지 않고, 잠자는 시간 이용하고, 부당하면 물리치고, 억울하면 주장하고, 필요하면 설득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드세요. 그물이 있어 못 가는 것 같지만 지혜와 용기와 열정이 있으면 그 사이로 바람처럼 빠져나갈 수 있어요. 당신 안의 꺼져가는 불씨를 찾으세요.”
결국 책은 설거지 와중에 창문 너머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옛 자신을 떠올릴 우리의 전업주부,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다가 지금은 무엇 하나 남지 않은 우리의 어머니에게 ‘일상의 반란’을 유혹하는 장문의 편지이다.
‘사랑하는 아줌마,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 우리 아줌마의 인생을 지금부터 확 바꿔버리자고요. 이승희 올림’.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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