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설계’. 중국은 북디자인을 그렇게 부른다. 북디자인이 책 표지를 꾸미는 일만이 아님을 가리킨다. 거기엔 본문 디자인도 포함된다.책의 내용이나 목적에 어울리는 글자꼴과 크기를 고르는 것부터 자간, 행간, 텍스트와 여백의 균형, 사진이나 그림과 본문의 관계를 결정하고, 나아가 종이, 인쇄 잉크, 인쇄 방식에 이르기까지 책의 모든 요소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 일본의 북디자인전
21일(금)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일본 현대 북디자인전은 지난 50년 간 일본 북디자인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일본의 우수 북디자인 600여 점을 선보인다. 북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한국 북디자인의 오늘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월 6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하라 히로무, 아와즈 키요시, 스기우라 고우헤이, 미치요시 고, 히라노 고, 도다 쓰도무 등 일본 북디자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작가를 비롯한 80명의 작품을 작가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책은 한 시대 문화와 사상을 담은 결정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일본의 지난 반세기 문화사를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한일 양국이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한글 가로쓰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세로쓰기 전통을 공유하는 점에서 한일 북디자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데도 유용할 것 같다.
전시 끝무렵인 9월 1, 2일 일본 북디자이너와 출판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심포지엄도 열린다.
다룰 주제는 ‘일본 북디자인과 동아시아 디자인의 정체성’이다. 문의 (02)580_1648
▥ 한국 북디자인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의 북디자인은 2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20~30년 늦게 1980년대 중반에야 전문적인 북디자인 개념이 등장한다. 북디자이너 정병규씨가 1984년에 차린 정디자인실이 최초의 편집디자인 전문회사다.
현재 국내 북디자이너는 수백명에 이른다. 그중 이름을 내걸 만한 작가는 10명 남짓하다.
북디자이너 서기흔 경원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한국 북디자인이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10년 전보다 후퇴했거나 멈춘 느낌”이라고 진단한다.
책을 사랑하고 직업의식에 철저하기보다 아르바이트하듯 작업하는 북디자이너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북디자인의 개척자 정병규씨의 견해는 더 비판적이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썩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북디자인이 장식과 상업성 위주로 흘러 문자의 힘과 정신을 전달한다는 본질을 제쳐둔 채 겉치레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그는 북디자인 개념이 ‘장식’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쓴소리 중에는 “책 만드는 정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공격도 들어있다.
예컨대 요즘 책들은 뒷면이 어른어른 비쳐 눈을 어지럽히는 종이를 써서 짙고 선명한 먹인쇄 대신 회색 인쇄를 한다는 것. 그가 보기에 그런 책은 ‘함량미달’ 상품이다. “해방 이후 한국 출판은 일본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아이디어, 내용, 영업 방식 등을 베껴왔다.
그런데, 책 만드는 정성은 왜 안 베꼈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출판인들의 귀에 따갑게 들릴 소리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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