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 금융권 부실 규모에 관한 자체 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우리 금융권이 안고 있는 잠재 부실채권을 얼마 전 정부당국이 발표한 공식통계치보다 20조~30조원 많게 보고 있다.이같은 괴리는 분류기준및 적용범위의 상이(相異)에서 빚어진 것이어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잠재부실에 대한 한경연측의 계산법이 정부측의 그것보다 훨씬 엄격했다는 것이다.
한경연측은 이번에 ‘이자보상 비율’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한다. 순이익이 마이너스여서 자력으로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보고, 이들 기업 여신을 잠재 부실채권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방식은 “국제기구나 선진국에서 널리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한경연측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측이 발표했던 부실규모는, 부실기업이라도 담보가 확실하면 정상채권으로 간주하는 보수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서로 엇갈리는 부실 액수도 계산법도 아니다. 동일한 사안을 보는 기본적 관점의 경중(輕重)을 말하는 것이다. 과소평가했느니 과대계상했느니 하는 양측의 공방도 결국은 관점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 관점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지 따지는 것이 바른 논점이다.
잠재부실의 범위를 넓게 잡은 한경연측과 이보다 훨씬 제한적 관점을 취한 정부통계, 이들 양자 사이에서 아마도 우리의 시장현실과 기업정서에 더 가까운 쪽은 전자라고 본다. 스스로 허물을 고백하며 잠재부실의 위험성을 경고한 재계의 진지한 자세와 비교하면, “더이상의 부실은 없다”는 정부측의 자신감(?)은 안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재계가 나서 “부실규모가 정부발표보다 많다”고 외쳐대기에 이르렀는지, 정부는 반성해야 마땅하다. 잠재부실의 인화성을 가볍게 보는 듯한 정부의 못미더운 자세와, 이로인한 경제파탄의 가능성을 절박하게 짚어 보인 것이 한경연의 보고서다.
보고서대로, 이익을 내기는 커녕 이자도 감당 못하는 기업이 전체의 20%를 넘고 있는 현실이 지난 2년여간 개혁과 구조조정의 결과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옥석을 가려 부실기업의 보호막을 단호하게 걷어내는 데 2차 개혁의 출발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량기업, 금융권, 나아가 전체 경제가 주기적으로 출렁이게 될 것이다. 제대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한은 경기사이클상 기껏해야 1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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