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형사재판이 열렸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죄값을 묻는 재판이었다.현장에 있던 한나 아렌트는 그를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의 괴수가 아닌 ‘유리상자 속의 허깨비’라고 표현했다.
재판장 앞에선 한 독일인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녀의 목을 부둥켜 안았는데, 이런 느낌을 “구역질 나는 연극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2년 후 그녀는 아이히만을 통해 전체주의에 복무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_진부한 악에 대한 보고’를 냈는데, 이것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사악하거나 유대인을 증오한 게 아니라 단지 관료주의적인 의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했을 뿐이고, 여기엔 유대인의 협력도 한 몫 했다고 말했다.
나치의 폭력을 가능케 한 것은 광신도가 아닌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충실한 가장이라는 충격적인 진단도 더했다.
논쟁적인 이 책은 유대인인 그녀가 유대인 조직으로부터 선전포고를 받게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는 ‘제2의 로자 룩셈부르크’로 불리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삶을 부담없는 문체로 설명한 평전이다.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녀는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 입학, 지도 교수인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고, 유부남인 그와의 사랑을 접고 이듬해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옮겼다.
칼 야스퍼스는 그녀에게 사회와 역사를 보는 시각을 일깨워준 스승이자 평생의 친구. 나치 점령하에선 유대인으로 박해를 받았고, 프랑스가 참전하면서 ‘독일놈’으로 간주돼 남프랑스 귀르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독일의 전체주의, 유대인의 시오니즘 모두를 비판했던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 등을 통해 인간의 오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전체주의의 발현과 확산 과정,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적극적인 참여주의와 행동주의를 부르짖었다.
좌익과 우익을 모두 비판한 그녀의 정치철학은 동구 몰락 이후 더욱 주목을 받는 이론이 되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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