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중견기업 연쇄부도설이 돌고 있다. 정부가 추진해온 채권전용펀드·비과세펀드 등 대책들이 차질을 빚으면서 일부 재벌 계열사와 중견기업의 회사채 유통이 중단되는 등 부도 도미노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19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가 각각 7%, 8%대에 진입하는 등 시장이 지표상으로는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우량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 회사채는 10~14%의 높은 금리에도 매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투신협회 관계자는 “통상 발표되는 회사채 금리는 소수 우량기업 회사채(A+급)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재벌계열사 및 중견기업들의 회사채는 아예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부도 직전 상황에 몰린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경색현상이 풀리는 듯했던 자금시장이 이처럼 다시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내놓은 시장 안정대책들이 잇따라 겉돌고 있는 데 따른 것.
채권전용펀드의 경우 당초 이달중 10조원 조성을 목표로 각 은행과 보험사가 펀드 참여 액수까지 할당했으나 지금까지 30%인 3조원밖에 실현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LG증권이 60여개 대기업 및 중견기업을 묶어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진한 프라이머리CBO(채권담보부증권)의 발행시점을 내달로 연기하는 등 각 증권사가 CBO 발행계획을 잇따라 연기 또는 취소하고 있다.
투신사의 비과세펀드도 문제다. 이 펀드 발매가 예고되자 2조원 규모의 예약금이 몰려 기업 자금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국회 공전으로 상품 판매가 연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 펀드와 관련, 국회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요구해놓고 있지만 정치권 내부문제로 한달째 개정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기업어음(CP)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허용한 은행 단기신탁상품은 높은 투자 위험에다 수익률이 기대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고객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태다. 은행들의 단기신탁상품 수신고는 지금까지 6,300억원 규모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들어 회복세를 보였던 기업들의 주식 가격이 중반부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도 자금난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등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유희대(柳熙大)대한투신 채권영업팀장은 “최근 기업 자금난의 결정적 원인은 은행들이 약속한 채권전용펀드 참여를 기피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며 “기업 자금난이 더 심화하기 전에 은행들이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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