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로 눈을 돌려보자. 빈곤, 질병, 전쟁, 기근, 홍수, 가뭄, 재난 등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재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채 신음만 깊어가는 대륙이다. 아프리카의 재앙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1981년 세계은행의 주도로 국제원조가 시작된 이래 지난 20여년간의 비극적 악순환은 이제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있다. 세계화의 급류가 거세지면서 아프리카는 냉전시대 때보다 오히려 고립된 외딴지대로 추락을 계속중이다.최근 1~2년 사이 추세를 보여주는 몇 가지 통계만으로도 아프리카의 위기는 최악이다. 얼마전 유엔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세계빈곤지표에 따르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인구 12억 명 중 절반이 서부사하라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 절대빈곤층은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0%에 달한다. 의료 보건이라고는 꿈도 못 꾸는 인구가 2억명이나 되고, 200만 명의 어린이들이 5세가 되기도 전에 죽는다.
아프리카의 삶은 갈수록 후퇴만 해 왔다. 1975년 670달러(1987년 가격기준)이던 아프리카인의 1인당 평균소득은 1999년 520달러로 줄었다. 이 기간에 다른 개도국 국민의 소득이 약 50% 오른 것과 엄청난 대조로 지적된다.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아프리카인들은 아시아인들보다 잘 살았다. 전세계 개도국의 평균 국민소득보다 아프리카인들의 소득은 12% 높았고, 동아시아 주민들보다는 무려 4배나 더 많은 수준이었다. 오늘날 아프리카지역의 소득수준은 다른 개도국이나 동아시아지역에 비해 40% 낮다.
10년 전 세계은행은 아프리카가 매년 적어도 4~5% 씩의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비극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보를 울렸었다. 그러나 그동안 수천억 달러의 원조자금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아프리카의 평균 성장률은 그 절반 수준을 맴도는 데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에 정상적인 정부기능, 나아가 국가의 통치관리기능이 총체적으로 붕괴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빈곤의 문제라고 뭉뚱그릴 수 있겠지만 여기에 앞뒤로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비극으로 등장한 게 바로 에이즈 문제이다.
지금 전세계의 에이즈 감염자 3,600만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300만 명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5~24세의 젊은이들이 1,000만명이나 된다. 아프리카의 에이즈는 서방과는 달리 동성애자들의 병이 아니다. 이성간의 접촉으로 확산되는 일반인들의 병이고, 어린이들의 희생도 막대한 국가적 재앙이다. 지난주 남아공 더반에서 열렸던 제 13차 세계 에이즈대회는 ‘아프리카 에이즈’에 대한 지구적 각성을 촉구했다.
198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의 에이즈 실태는 다른 나라들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 지역의 에이즈는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바이러스의 종류가 다를 것이라는 추적연구도 있지만 오히려 이 지역 사람들의 행태와 환경적 요인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질병이 만연돼 있는데다, 영양결핍으로 인한 면역약화, 내전과정에 빈발하는 강간, 섹스 빈도와 행태 등이 ‘아프리카 에이즈’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가난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섹스 밖에 없다는 진단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며, 에이즈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자신이 감염됐는지 여부에 대한 인식도 없는 것이 심각하다고 지적된다.
에이즈는 그래서 ‘빈곤의 병’이다. 아프리카 에이즈의 폭발적 확산은 바로 아프리카문제가 확대 재생산된 또 하나의 재앙이다.
세계화가 눈부신 만큼 여기에 수반되는 가난의 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의제가되고 있다. 무너지기 직전의 아프리카위기를 다룰 범세계적 관심이 다시 필요하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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