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수의 새 비평집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은 비평적 진실의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넉넉한 문학혼을 바탕으로 문학과 비평의 넓고 깊은 진실의 자리를 탐사해 가는 그의 글은 비평의 살아있는 가능성을 입증한다.
10여 년 전에 그는 “우리 비평에 꼭 필요한 것이 비평가와 작가의 의식의 만남”이라며 그것을 ‘공감의 비평’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공감의 비평의 흔적들로 꾸며진 새 비평집은 비평 읽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소설의 미세한 숨결에서 거센 파동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않고 교감하려는 의식의 더듬이를 지닌 비평가다.
그 더듬이는 섬세하면서도 유현하고, 부드럽게 문학이라는 대상을 끌어안으면서도 문학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가능케 하는 비평 기제다.
부드럽게 투시하는 비평적 통찰력을 지닌 김치수는 분석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인문주의자다. 그의 비평은 항상 텍스트의 현실과 작가의 현실, 텍스트가 재현하고 있는 세계의 현실, 독자의 현실을 두루 고려하는 대화적 상상력의 공간이 된다.
또 동서고금의 문학적 자양분을 온축하여 지금, 여기의 새로운 문학 창조에 기여하려는 비평적 의지가 구현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문학 지형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새롭고 실험적인 경향에 대해서 넉넉하게 반응하면서도 문학의 진정성을 보듬으려는 노력이 그의 비평에 긴장의 자장을 형성한다.
아울러 프랑스의 누보로망론이나 기호학 이론, 그리고 문학사회학 이론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바, 형식 시학과 사회 시학의 통합이라는 그의 비평적 목표는 매우 의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평단에서 본격적인 작품론과 작가론의 경지를 열어보인 세대의 비평가답게 김치수는 문학에 대한 감동과 애정을 바탕으로 개별 작가나 작품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준다.
가령 홍성원의 소설에서 갈등의 미학을 넘어 대결의 미학을 축성한 남성문학적 특징을 읽어내고, 이청준의 ‘서편제’에서는 “처절한 삶의 표현의 절정을 지향하되, 내면화하고 풀어버린 한의 표현”을 읽어낸다.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은 깊고 통렬한 삶의 진실을 꿰뚫고 있기에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억압된 욕망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인성의 소설은 사회적 제도와 제도화한 소설의 억압이라는 이중의 억압에 대해 전복적인 힘을 지닌다.
최윤은 사물 자체의 본성과 역사성, 그 사물에 대해서 개인이 겪은 정서적 체험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예민한 촉수로 사물을 끝없이 더듬고 있는 작가다.
젊은 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경숙 소설을 읽을 때는 슬픔의 정체를 탐문한다. 서하진 소설에서는 이 땅에서 여성주의자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주목한다.
김영하의 소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우리의 일상적 삶을 충격적인 기법으로 도려내서 깊이 있는 세계로 환원시켜 주고 있다”고 본다. 모두가 김치수의 개성적인 독법의 결과다.
비평집의 1부는 우리 소설과 문학, 그리고 인문학 전반을 큰 그물로 조망한 글들로 짜여져 있다. 문학의 현장을 지킨 비평가의 종합적인 논의라서 저간의 우리 문학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인문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표현 인문학’론은 비평과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새로운 지혜의 담론으로 생산적인 대화를 요청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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