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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금이 개헌 논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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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금이 개헌 논할 때인가

입력
2000.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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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제헌절이었다. 맥빠진 기념식엔 여야 여러 중진급 국회의원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헌절을 기념하는 논설이나 기사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위헌의 상처 내지 헌법 파괴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총검과 군화에 짓밟혀 ‘타살’을 당한 적도 있었고 독재자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노리개 신세가 된 적도 있었다. 위헌적인 개헌절차, 민주주의의 본질에 어긋나는 개헌내용, 헌법과 헌법적 현실과의 불일치 등 실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다행히 현행 헌법에는 예전의 헌법이 안고 있던 그런 치부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오늘의 정치현실을 헌법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 헌법기관들이 각기 제 소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물음만은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입법부인 국회가 제 구실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는 딴말이 없을 것 같다. 자당의 정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정을 파행으로 몰고 가면서 방탄국회, 날치기 처리, 국회 보이콧 따위를 밥먹듯이 자행해왔다. 제헌절을 맞아 국회의원들은 진정 국민의 수임자이자 입법부의 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하고 국민 앞에 시말서라도 써바쳐야한다.

그런데 그러한 도리를 다하기보다는 성급한 계산 아래 개헌 논의를 제기하는 정치권을 보면 한심스럽다. 더욱이 대통령 중임제를 집권당 아닌 야당 쪽에서 먼저 제기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한 야당의원이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주장한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는 예전 같으면 집권당이 정권 연장을 위한 카드로 놓고 야당은 이것을 장기집권 음모라면서 결사 반대로 맞서는 것이 정석이었는데 이번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혹시 야당이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당의 집권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 미리 유리한 틀을 마련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남의 집권은 5년이 넘으면 안되지만 내가 잡으면 8년까지도 괜찮다는 발상으로서 4년 중임제 자체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대통령 임기말의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중임을 위한 권력 남용, 선심 정치’걱정은 어디로 갔으며, 권력누수는 야당의 부추김과 공세 때문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실은 나도 현행 헌법에 개정의 여지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5년 단임제도 굳이 배제시킬 이유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거론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두루 알다시피 오늘날 우리 앞에는 엄청난 국가적 난제가 겹겹으로 쌓여 있는데 난데없는 개헌론까지 등장한다면 정치권은 물론이고 온나라가 과열에 휩싸여 국력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국난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해온 야당이 바로 이 판국에 중임제를 꺼내는 것은 야당 자신을 위해서도 득책이 아니다. 설령 그 내용이 옳다 하더라도 지금은 적기가 아니란 말이다.

현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았고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2008년 2월에 끝난다. 어차피 현 대통령에게 중임제 적용의 여지는 없을 것이 뻔한 이상, 중임제의 약효는 7년 반 뒤의 일인데, 뭐 벌써부터 ‘김칫국’에 들뜨고 있는가. 이 지적은 물론 여당 일부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집권 전에 개헌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그 지략은 그럴듯하지만, 그것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나 야나 간에 지금은 개헌 생각 말고, 남북문제과 경제난국 등 발등에 떨어진 나라의 급한 일을 해결하는 데 합심해 나가야할 것이다.

/한승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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