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이 성사(聖事)라고 추켜 세우는 혼인을 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본다(그러므로 혼인은 더욱 중요한 것!).내가 뜻하는 이데올로기란, 무엇보다도 삶의 박잡다기(駁雜多岐)한 켜와 결을 권력의지의 동등화작용(니체)에 의해 박제화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기껏 인습의 타성에 불과한 것을 불변의 가치인 양 강권하는 체제인 것이다.
이혼률이 구미의 형편을 바짝 뒤쫓고, 동거와 독신이 사회적 의제로 채택되는 등 근년들어 혼인에 대한 전통적 사고와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어간다.
혼인의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인간현상’의 관점에서 이 열병 같은 제도를 재조명하려는 추세는 거부할 수 없어 보인다.
왓슨(R. Watson)이 그의 유명한 귀신론 연구의 결론에서, ‘인간이 없으면 귀신도 없다’는 상식의 묘미를 재확인시켜 주었듯이, 혼인은 귀신처럼 인간이 만드는 관게태이므로 기실 인간이 없으면 혼인도 없는 것이다.
혼인의 전통이 각지에서 균열, 난파하면서 미봉적이고 무분별한 변칙과 땜질이 유행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완고한 전통주의자들은 시류에 눈감고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만 반복한다.
이 착종된 현실 속에서,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언급한 ‘기나긴 대화로서의 혼인’을 떠올려 본다.
20~30대의 신부들이 바람직한 남편상의 수위 자리에 ‘대화하는 남편’을 꼽은 설문을 본 적도 있지만, 대화의 부재야말로 물질적 근대화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자랑하는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적 수준을 극명하게 증거한다.
짝사랑만으로 끝맺은 니체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대화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일시적이라고 주장한다.
대화의 가치야 어느 분야에서건 응당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화로서의 혼인’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은, 그 실천이 혼인의 구조를 내파(內破)하거나 그 틀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김영민 www.sophy.pe.kr (철학·한일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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