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라 도시오 논설위원장-정달영 한국일보주필 대담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동북아시아의 정치구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한반도 문제는 때마침 21~23일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정도로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일보의 정달영 주필은 제휴사인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사 초청으로 도쿄(東京)를 방문, 아사쿠라 도시오(朝倉敏夫) 논설위원장과 남북 문제와 한일관계 등에 대해 특별대담을 가졌다./편집자 주
▲아사쿠라:남북 정상회담 이후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무엇입니까.
▲ 정:그 이후 한국민의 북한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반세기에 걸친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불화와 대립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TV에 비친 김위원장의 모습은 충격이었죠.
한 생물학자가 공룡 이야기를 쓰면서 ‘김위원장의 몸에도 뜨거운 피가 흘렀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습니다. 그동안의 냉전적 고정관념에 대한 반성도 일었죠.
다만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자주적 통일’과 ‘연방제 합의’에 대한 국민의 이해는 아직 그리 깊은 편이 아니어서 혼란이 많습니다.
북진통일, 또는 흡수통일이 뇌리에 박힌 상황에서 갑자기 ‘함께 사는 통일’로 사고를 전환하기란 쉽지 않은 거죠. 국민의 이해·지원을 얻으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폰 바이체커의 말처럼 통일은 서로 나눔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다행히 남북공동선언 이후 좋은 의미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 북한이 대남 비방 방송을 중단했고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한국이 대북 비난 방송을 중단한 것은 물론이죠. 가시적인 성과로는 8월에 이뤄질 이산가족의 상호 방문을 들 수 있습니다.
▲아사쿠라:일본으로서도 남북 정상회담은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많은 일본인이 정상회담 모습을 TV로 지켜 보았고 김 국방위원장의 육성을 듣고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점에서 일본으로서도 남북대화의 진전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다만 남북 대화로 곧바로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죠.
한국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1983년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테러를, 1987년에는 대한항공 여객기 공중폭파 테러를 자행했습니다.
한국에 잠수함을 침투시키고 공작선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기도 했어요.
그런 연유로 일본으로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무조건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 납치라는 대북 불신감을 상징하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남북 대화의 진전에서 한국의 대북 경제협력의 향방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최대 목표가 체제 유지라면 물자와 기술, 자본과 함께 정보도 반드시 함께 따라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북한으로서는 커다란 위험부담이어서 경제지원만 하면 대화가 진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일본이 한국의 대북 지원을 뒤에서 밀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일본의 요망 사항이 전혀 진전되지 않고 일본의 경제 지원만이 한국을 거쳐 북한에 흘러 들어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정:일본이 북한을 믿지 못하 듯 한국이 북한을 믿는 것도 어렵습니다. 증오의 세월이 길었기 때문에 신뢰 회복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대통령의 말처럼 차가운 머리로 차분하게 접근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만약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이 추진하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도 전제인 북한 위협의 해소로 불필요하게 됩니다. 물론 일본이 느끼는 북한 위협도 사라지겠죠.
▲아사쿠라:적어도 현재 일본으로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중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어요.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NMD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바뀔 수 있고 일본이 미국과 함께 연구중인 전역미사일방어(TMD) 구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그동안의 대북 핵·미사일 협상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을 느껴 왔어요.
▲정: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 4국, 즉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긴장과 군비증강으로 이익을 누리는 조직, 즉 군산복합체 등은 평화정착과 통일을 바라지 않을 수 있겠죠.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주변 4국과 동북아 정세에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습니다. 통일 한국이 안보상의 위협을 제기할 가능성은 없어요. 남북의 군비증강은 냉전의 산물이며 대화가 진전되면 남북 공생의 지름길로서 군비 감축이 시작될 공산이 큽니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은 7,000만명의 소비 인구를 가진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북아경제권의 실현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본이 이런 측면을 평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사쿠라:우선은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 대화가 그렇게 진전될 지 여부가 극히 불투명합니다. 물론 독일의 예에서 보듯 예상외로 급진전될 수도 있겠죠. 그런 점에서 일본의 안보와 동북아 전체의 안보가 장기적으로 복잡한 방정식을 눈앞에 두었다고 볼 수 있어요. 바로 그 때문에도 앞으로 일본과 한국, 미국 등 3국의 협조와 연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군산복합체 얘기가 나왔지만 적어도 일본은 ‘무기수출 3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정: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 교섭은 언제쯤 재개되겠습니까.
▲아사쿠라:일본 정부는 8월중에라도 본회담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이 원칙을 간단히 접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교섭이 빨리 재개되는 것은 좋지만 특별히 서둘 이유는 없어요.
▲정:북일·북미 대화의 진전은 남북대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사쿠라:일본도 3국 공조의 틀에서 돌출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한국은 4월, 일본은 6월에 각각 총선을 치렀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으나 일본에서는 극히 일부에 그쳤다고 들었습니다.
▲아사쿠라:세대교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한 양국관계면에서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총리의 타계가 상징적인 의미가 컸어요. 양국 의원교류의 최후의 거물이 사라진 거예요.
▲정:한국에서도 지일파 의원이 일제히 퇴장했습니다. 김종필 전총리 정도가 남았을까요.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이어져 온 의원외교의 굵은 줄이 끊어진 듯한 감이 있습니다. 일본어가 가능한 의원은 거의 퇴장해 앞으로 양국 의원이 만나면 통역을 붙이든가, 영어로 대화해야 합니다.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아사쿠라:1998년 김대통령 방일 이래 양국관계는 눈부시게 좋아졌습니다.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시각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양국은 공통된 문화요소도 많고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의 존중 등 가치관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질적인 요소도 당연히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르다고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면 이질성에 대한 존경과 관용이 사라집니다. 의원외교에서도 영어나 통역이 필요한 교류관계가 좋다고 봅니다. 그것이 오히려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상대의 다른 점을 인정하는 자세는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1996년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의 공동 국민의식 조사에서 한국인의 83%가 ‘일본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답했습니다.
한편 1998년 방일 당시 김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양국의 1,500년에 걸친 교류사에서 불화는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침략한 7년과 메이지(明治)시대 이후의 40년, 즉 합쳐서 50년이 채 안된다는 내용이었죠. 이때문에 1,500년의 선린우호관계를 손상하고 회복할 수 없다면 부끄럽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35주년을 맞았습니다. 식민지 통치기간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 경험을 잊을 수는 없으나 이제 비로소 정신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아사쿠라:과거 일본이 가해자이고 한국이 피해자였던 때가 있었다는 점은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이제는 그만 잊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메이지유신 시절 조슈한(長州蕃)은 아이즈한(會津蕃)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고 그 후에도 혹독하게 아이즈한을 다루었어요. 지금도 두 지역의 자치단체장은 서로 악수를 나누지 않는다고 합니다. 피해자의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국내에서도 그런데 외국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김대통령의 방일 당시 채택된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행동계획에 지구적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식목운동 등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는 것등입니다. 두 신문사가 공동사업을 펼치는 것도 좋으리라고 봅니다.
▲아사쿠라: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구적 규모의 양국 협력은 이번 오키나와(沖繩) G8 정상회담에서 다룰 정보기술(IT)혁명과 관련한 개도국 지원에서도 가능합니다. 오키나와 G8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의 시각은 어떤가요.
▲정:일본이 의장국으로서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통일노력을 지원하는 내용의 특별성명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죠. G8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시각을 통일해 분명한 지지를 밝힌다면 우리에게는 큰힘이 될 것입니다.
▲아사쿠라:특별성명은 남북 대화 촉진과 교류 확대를 환영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준비가 경제·문화·학술면에서 급속한 교류 진전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남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가능한 한 최선의 지원을 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일본이 너무 앞장서면 지나치다는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있어요. 이런 오해가 사라지는 양국 관계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정:남북 문제에서 일본의 역할은 사실상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앞으로 경제적인 역할과 관련한 이웃으로서의 일본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양국 국민 교류가 봇물을 이루는 현재의 흐름과 맞는 일본의 긍정적 역할이 기대됩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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