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한수진(31) 앵커는 완벽한 ‘뉴스 분장’을 하고 있었다. 메이크업에 보통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요샌 잔주름이 많아져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며 웃는다.1994년부터 ‘SBS 8 뉴스’를 벌써 6년째 진행하고 있으니,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남을 법도 하다. 이제 방송 전의 초긴장마저 기분 좋은 활력으로 느낄 정도로 노련해졌다.
브라운관의 정지된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별병은 ‘걸어다니는 웃음 제조기’다. 그런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이 6년 동안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실수는 되도록 빨리 잊고, 징크스는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단, 절대적으로 지키는 금기는 방송 전의 사탕이나 과자. “입에 침이 고이니까요. 얼굴에 먹칠을 하고 카메라에 서는 격이죠.”
그녀는 작년 6월, 뜻하지 않은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다. 한양대에서 실시한 ‘닮고 싶은 역할 모델’ 설문조사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나란히 1위로 꼽힌 것. 그 얘기를 꺼내자 “에이, 뭐 현정이가 모든 차트를 휩쓸다 한번쯤 양보한 건데요”라고 겸연쩍어한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그녀는 KBS 황현정 앵커(영문학과)와 학번이 같은 동문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KBS 황 앵커는 아나운서, MBC 김은혜 앵커는 기자 출신으로 정확히 대별된다. 한수진은 91년 뉴스전문 아나운서인 ‘앵커 요원’으로 입사해 뉴스 진행을 맡은 94년까지 기자 생활을 했으니 꼭 그 절반쯤 되는 위치다.
스스로는 “특종 하나 제대로 못했는데, 기자생활이라고 내세울 건 없다”고 겸손해하지만, 그녀는 기자의 뉴스 감각과 아나운서의 안정감을 두루 갖췄다.
정확하고 간결한 코멘트와 진행은 두 직종의 장점을 적절히 구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독 여자 앵커에 대해 ‘출신’을 눈여겨 보는 것은, 그만큼 위상과 역할이 많이 변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보조앵커’ 내지 ‘뉴스의 꽃’이라는 느낌만 주었던 초기에 비해, 이제는 맡는 뉴스의 비중도 커졌고 코멘트도 많아졌다.
한수진도 그런 추세 변화를 실감한다. “저희들의 위상이 마치 남녀평등의 척도가 된 것 같아요.” 얼마전 한 초등학생에게서 온 e메일에는 ‘왜 여자 앵커는 뉴스 끝 인사말을 안하느냐’는 도발적 항의가 담겨 있었다.
그런 부분은 그동안 공동진행자인 김형민 앵커와 기자 선후배 사이로 자연스럽게 조율한 일이기에 실상 자신은 그 불평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앞으로는‘내일 또 뵙겠습니다’ 라고 한 마디씩이라도 붙여야 할까 봐요“ 라고 덧붙인다.
어깨 그림과 함께 나오는 앵커의 코멘트는 취재 기자가 간략히 적어 온 것을 수정·첨삭해 직접 작성하는데, 김형민 앵커가 간단한 ‘스크린’을 한다.
앵커는 아무래도 기자보다는 생활반경이 제한적이므로 취재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메이크업 톤도 신중히 선택하고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도 하는 등,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다. 여성 앵커라서가 아니라 뉴스의 간판이기 때문이다. 일간신문 기자인 남편도 큰 도움을 준다.
그녀는 드라마가 조장한 환상으로 앵커우먼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시사감각을 유지하며 관심을 갖고 조리있게 말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조언을 남겼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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