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서의 일이다. 자식한테 노후를 의탁하려고 이 나라를 아주 떠나게 된 친지의 배웅을 나갔다. 영이별이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천천히 작별을 아쉬워하려고 넉넉한 시간에 집을 나섰더니, 길까지 잘 뚫려서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별 수 없이 한시간도 너머 혼자 우두커니 기다려야 했다. 만나기로 한 은행 앞은 단체여행을 떠나려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고 있었다. 모처럼의 나들이로 들떠서, 거침없이 서로 찾고 부르고 웃고 떠드는 소리로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지만 그들이 어렵사리 얻어낸 해방감이 감염됐는지 나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졌다.단체로 수속을 끝낸 가이드가 나타나 큰 소리로 호명을 해가며 여권과 탑승권을 나누어주자 그 유쾌한 무질서는 단박 성적표 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숨죽인 긴장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 여권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난 가이드는 공항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모님들 우리 공항을 한 번 자세히 봐두시기 바랍니다”하면서 자기가 먼저 고개를 길게 빼고 공항을 한바퀴 휘둘러 보자 여행객들도 따라했다. 관광 안내를 김포공항부터 시작할 모양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모시고 갈 나라의 공항하고 이 공항하고는 같은 건설업체가 지은 겁니다. 물론 우리 국내업체죠. 공교롭게도 낙찰가가 똑같아서 같은 돈을 들여서 지은 건데 그쪽 공항은 이 공항과는 댈 것도 아니게 아름답고 으리으리합니다. 곧 보시게 되겠지만 같은 돈 들여서 지은 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왜 그런지 다 아시죠? 우리의 부실공사가 어디 돈이나 기술이 모자랍니까. 중간에서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실지로 들이는 돈은 총공사비의 반의 반도 안되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너도 나도 턱을 크게 주걱거리며 조용해졌다.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다가 시무룩해지니까 그들이 견디어 온 치사한 세월만큼이나 참담한 주름살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관광을 그런 식으로 시작해도 되는 건지, 나도 옆에서 좀 놀랐고, 또 가이드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었지만, 내가 정말 놀란 건 노년층 관광객의 표정에 나타난 전적인 동의(同意)와 체념이었다. 아마 그때 그들의 마음속으로는 우리나라의 온갖 이름난 부실공사로부터 작게는 말단 관공서나 교통경찰한테 직접 당한 수탈까지가 일순간에 꿰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고위 공직만 거쳤다하면 그의 공식적인 수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막대한 재산을 형성해도 으레 그러려니, 망한 기업주가 국민을 모조리 빚쟁이로 만들고도 자기는 해외에 엄청난 외화를 도피시켰다해도, 그게 어디 처음 당하는 일인가, 웬 호들갑. 하는 식으로 체념부터 해버린다. 권력이나 재벌의 부정부패에 대해 흥분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게 국민정서처럼 돼버렸다. 그런 정서를 가진 국민이 해외에서 과연 기 죽지않고, 무시당할까봐 조바심하지 않고, 편안하고 의연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을까.
왜 우리에게는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정치가 이다지도 지지부진 어려운가. 우리 생전에는 도저히 못볼줄 안 통일의 물꼬까지 튼 현 정부가 아닌가. 만일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정치가 통일보다 더 어렵다면 통일의 노력보다 더 앞서서 해결했어야할 문제가 아닐까. 이 나이에 무릎 꿇라면 꿇고 엎드려서라도 진실로 진실로, 간절히, 간곡히, 마음으로부터 겸손되어 빌고 싶다. 부정이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한 정치 한 번만 보고 죽게 해달라고.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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