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규모(수신액)의 경쟁’에만 몰두, 돈이 넘쳐나는 데도 고금리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파행적 영업방식을 고집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있다.16일 금융계에 따르면 11개 시중은행의 총수신은 13일 현재 374조3,193억원으로 지난해말에 비해 28조2,633억원이 증가했다. 수익률 하락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신탁계정을 제외한 은행계정만 보면 무려 45조4,513억원이 늘어났다. 주식시장 및 제2금융권 등으로부터 흘러나온 시중 부동자금이 거의 대부분 은행 정기예금 등에 몰렸다는 얘기다. 특히 우량은행으로 꼽히는 국민, 주택은행이 각각 7조4,217억원과 9조964억원의 수신 증가로 시중은행 전체 증가분의 58%를 차지하는 등 선봉장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같은 수신 증가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수신금리는 요지부동이라는 점. 1년제 정기예금의 고시금리는 연 7.0(주택)~8.0%(서울)이지만, 영업점장 및 본부 협의금리 등을 모두 적용하면 연 7.7(하나)~9.0%(외환, 서울)에 달한다. 최근에도 각 은행들은 특판행사를 잇따라 펼치며 금리인상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은행의 고금리 체제는 자금편중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예대마진 축소로 은행산업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고금리 유지→은행 자금집중 심화→금융기관간 자금편중→금융불안 및 기업자금난 심화’ 등의 연쇄반응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중 은행 예대금리차(신규취급액 기준)는 2.43%포인트로 외환위기 이전(2%포인트)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은 물론, 미국(4.54%포인트)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자금운용 어려움으로 ‘역(逆)마진’까지 감수하면서 은행들이 규모 경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경재(李景載)기업은행장은 이와 관련, “주택·국민 등 수신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은행들이 앞장서서 수신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은행 수신금리 인하는 타금융권으로의 자금 이동, 은행 수익성 확보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晟洙)연구위원도 “정부가 은행들에 금리인하를 강요하는 관행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도 은행이 스스로 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시장은 은행들에 자산규모보다 수익성 위주로 금융시스템을 개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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