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경북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구간에서 발생한 수학여행버스 참사는 30년 전인 1970년 10월 서울 경서중 수학여행단 45명이 불에 타 숨졌던 충남 모산건널목사건의 또다른 재판이었다.■사고 순간
사고지점은 심한 내리막 커브길. 더구나 이슬비가 내려 노면이 잔뜩 젖은 상태였다. 오후 2시40분께 1차로를 달리던 5톤화물차(경남82라1092호)가 미끄러지면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한바퀴 돌면서 2차로와 갓길 사이에 역방향으로 정지했다.
뒤따라오던 3.5톤화물차(인천83나4250호)가 이 차의 옆면을 스친 뒤 2차로에 급정거하는 순간 속리산관광버스(충남70아8064)가 이 화물차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뒤이어 부일외고 학생들을 태운 대륙관광버스(부산70바3915)가 급히 방향을 틀며 1차로에 멈춰섰고 뒤따르던 포텐샤승용차(충북32다1204)도 급정거했지만 뒤따르던 또다른 대륙관광 수학여행버스(부산70바3903호)가 속력을 미처 줄이지 못했다.
이 버스가 포텐샤승용차를 수십미터나 밀고 나가 정지하는 순간 승용차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뒤이어 엘란트라승용차(인천 X나4250호)와 소나타(부산 28구8458호) 차량이 잇따라 사고현장을 덮치면서 순식간에 8대의 차량이 좁은 2차선 도로상에 뒤엉켰고, 승용차에서 치솟은 불길이 삽시간에 이들 차량 모두에 옮겨 붙였다.
또 맨 뒤에 따라오던 부산70바3925호 대륙관광 수학여행버스는 추돌을 피하려 오른쪽으로 급핸들을 꺾으면서 15㎙ 언덕 아래로 굴렀다.
목격자 손희모(54·대전 동구 산암동)씨는 “50여㎙ 전방에서 갑자기 ‘펑’하는 폭발음이 3~4차례 이어진 뒤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며 “곧이어 멈춰선 차량들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사고 순간 학생들은 불길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좁은 문과 창문틈을 통해 한꺼번에 빠져나오느라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3903호 버스에서 빠져나온 함모(16·독어과1)군은 “모두들 필사적으로 창문을 깨고 탈출했으나 앞쪽에 있던 친구 10여명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먼저 탈출에 성공한 학생들은 울부짖으며 차안의 친구들을 끌어내리려 애썼고, 사고현장 부근을 운행하던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와 승객들도 구조에 나섰으나 대부분 불길 때문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현장
사고 현장은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지고 뒤틀린 채 불에 타 앙상하게 잔해만 남은 차량들과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 이들 차에서 흘러나온 기름 등이 뒤엉켜 참혹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또 버스가 추락한 15㎙ 아래 논바닥에는 가방과 신발 등 학생들의 소지품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급박했던 사고 순간을 보여주었다.
■피해
이날 희생자는 거의 모두 불에 타 숨졌으며, 부상자들 중에도 전신화상을 입은 중상자가 상당수여서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텐샤승용차를 밀고갔던 3903호 버스에 불이 맨 먼저 옮겨붙는 바람에 이 버스의 앞쪽에 탔던 학생들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버스에서 탈출한 양정모(16·독어과1)군은 “추돌의 충격으로 잠시동안 모두 멍한 상태였던데다 순식간에 불길과 연기가 덮쳐 갈팡질팡했다”고 전했다.
폭발사고가 난 포텐샤승용차 승객 3명과 쏘나타 운전사도 현장에서 숨졌다.
그러나 3915호 버스나 언덕 아래로 추락한 버스에 탔던 학생들 가운데는 사망자가 없었으며, 속리산관광버스와 다른 승용차 승객들도 불길이 번지기 전에 대부분 탈출, 큰 화를 면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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