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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속에서도 스승은 있었다

입력
200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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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몸 던져 우리를 구하지 않았다면 우린 불에 타 다 죽었을 거예요.” 14일 추풍령 7중 추돌참사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부일외국어고 1학년 독일어과 학생들은 혼절한 채 병상에 누워있던 담임여교사 윤현정(尹鉉晶·31)씨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독일어과 학생 42명이 탔던 부산70바3903호 대륙관광버스(7호차)는 피해가 가장 컸다. 이날 꽃다운 목숨 13명이 모두 이 버스에서 희생됐다.

그러나 살아남은 29명의 학생에게 윤교사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버스 맨 앞쪽에 앉아있던 윤교사는 앞쪽에서 붙은 불이 안쪽으로 번지자 “불이야”라고 소리치며 잠자고 있거나 충돌 충격에 정신을 잃은 제자들을 깨웠다.

앞문이 열리지 않자 학생들을 침착하게 뒤편으로 피하도록 한 뒤 “모두 유리창을 깨”라고 지시하고 자신도 음료수병으로 유리창을 깼다. 160㎝ 키에 가녀린 몸매지만 제자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윤교사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당황한 학생들을 한명씩 유리창 밖으로 내보냈고, 불길이 몸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매캐한 연기를 못 이겨 유리창 밖으로 뛰어내린 윤교사는 오른발에 골절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김천제일병원에 입원한 윤교사의 곱던 손가락과 손톱은 상처투성이가 됐고 온몸은 멍으로 얼룩졌다.

이주희(17)양은 “너무 당황해 몸이 굳어 버린 저를 선생님이 일으켜 세운 뒤 몸을 유리창 밖으로 밀어 구해주셨어요. 우린 모두 선생님이 살리신 거예요”라고 울먹였다. 그러나 윤교사는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내가 다 살렸어야 하는데…”라며 숨진 제자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다 다시 혼절했다.

미혼인 윤교사는 부산 동아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95년 부일외고 개교때부터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김천=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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