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조 영토조항은 개정돼야 하는가. 통일 후 이산가족들이 겪게 될 가족법상의 혼란은 무엇일까.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일대 전기를 맞으면서 헌법을 비롯, 대북 관련 법체계 정비를 둘러싼 문제제기가 활발하다.
통일로 가기 위해, 그리고 통일후 충격과 혼란의 최소화를 위해 우리가 정비하고 미리 준비해야 할 법률은 무엇이 있는지 양건 한양대 법대학장과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게 들어보았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194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가족사회학을 연구했다. 1973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으로 시작해 95년 부소장을 거쳐 올 2월 소장에 취임했다.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헌신으로 대통령상 표창과 ‘여성을 돕는 여성상’을 수상했으며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이혼원인및 과정 사례연구’등 부부관계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양건 한양대 법대학장
1947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미 오스틴대를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했고 지난해부터 법대학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연구’‘미국헌법과 대외문제’‘법사회학’등이 있으며 경실련 창립 멤버로 1998년 시민입법위원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요즘 남북관계 진전을 이유로 헌법을 비롯한 관련 법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양건 = 먼저 헌법을 보면 제3조와 4조가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3조는 우리나라의 영토를 한반도로 함으로써 북한을 불법집단 혹은 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반면 4조는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우리가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한다면 이 두 조항은 조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6공 이래 흡수통일을 지양한다는 입장이므로 영토조항과 통일원칙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이지요.
또 두 조항의 조화문제와 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만큼 3조를 손질해 헌법의 효력범위를 남쪽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곽소장은 지난달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여성계 대표의 청와대 오찬에서 통일에 대비한 민법 정비의 필요성을 언급하셨다지요.
▲곽배희 =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고 이태영(李兌榮)여사가 소장으로 계셨을 때부터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해지면 반드시 남과 북의 가족문제가 복잡하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에 신경을 써왔습니다.
청와대에선 배석한 통일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했더니 흔쾌히 돕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론 법무부 특수법률과에서 독일 대만 예맨 등의 사례를 참고해 이에 관한 준비작업을 진행중인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 지 의문입니다.
흡수통일을 한 독일과 우리의 경우가 같을 수가 없고, 법체계 또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막상 일이 닥치면 감당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연구사례는 말 그대로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민간 단체의 경우는 그동안 대부분 북한관련 자료가 대외비로 취급돼온 탓에 귀동냥으로 북한 민법의 얼개 정도를 파악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양건 = 얼마전 통일부 장관이 남북 이산가족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말을 해서 파장이 일기도 했는데 그것이 정말 실현된다면 머지않아 닥칠 일이 될 수도 있겠네요.
▲곽배희 = 물론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체적으로 혼인, 상속, 재산, 호적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봇물터지듯 쏟아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월남한 이산가족이 남쪽에서 중혼을 했을 경우 그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북에 두고온 재산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북에 자녀가 있었다면 상속권은 누가 가질 수 있는지 등에 관한 분란이 엄청나게 발생할 것입니다.
남북의 가족관계법은 기본적으론 큰 차이가 없지만 이에 대해선 전례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또 남북의 개별조항이 상충될 경우 이를 국제법에 의거해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남과 북이 함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지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것은 헌법의 해석 또는 개정과도 관련이 있는 사안이겠지요.
"통일후 재산·상속권
엄청난 혼란 발생할것
민간주도의 연구 필요"
-그러면 헌법의 영토조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양건 =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이 조항을 폐지해야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북의 위협이 소멸되고 평화가 정착됐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폐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는 이를 위한 쌍방의 약속이 존재할 뿐입니다. 다만 향후 영토조항과 다른 법률 또는 정책의 예상되는 마찰은 탄력적 법운영과 해석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용어로 헌법의 변천(變遷)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헌법조항과 상이한 입법이나 정책으로 해당조항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것이지요. 일본 헌법의 예를 들면 평화조항은 군대를 만들지 않는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위대를 운영함으로써 90%이상 변질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토조항을 뒷받침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7조 반국가단체 조항을, 현 집권당이 야당 시절부터 주장한 대체입법을 통해 손질하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해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를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실질적인 위협행위가 있을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 바꾸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계속 호전될 경우 북한은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곽배희 = 우리가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먼저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 내려 북한의 성의를 유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영토조항은 1991년 남북 유엔동시가입,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통일 전단계로서 국가연합을 설정하고 있는 정부의 통일방안 등을 감안할 때 이미 수명을 다한 것 아닙니까.
▲양건 = 그렇다고 해서 그 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경솔합니다. 여전히 불확실한 남북관계에서 좋지않은 상황이 생겼을 경우 우리가 대응할 근거는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고도 얼마든지 상황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데 왜 성급히 무장해제를 해야만 합니까. 한번 법을 고치면 되돌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법률정비에 있어서 남북간 상호주의 원칙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법치국가이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과 정치가 법 위에 있는 북한의 형법 또는 노동당 규약을 우리의 헌법이나 국가보안법과 등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좁은 상호주의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남북관계가 평화궤도에 진입했다는 판단이 설 때라야 우리의 결단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부모님과 저는 1948년 청진에서 남한에 온 월남가족입니다. 이번에 어머니가 8·15 방북신청을 했는데 이런 얘기를 해서 가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네요(웃음)
헌법 제3조 영토조항
폐지 검토는 시기상조
탄력운용 마찰조정을
-통일후를 대비한 장기적 관점에서 정비를 준비해야할 가족관계 법률은 무엇이 있습니까.
▲곽배희 = 각론으로 들어가면 남과 북의 법조항에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북한에는 우리 법에 있는 낙태금지 조항과 간통죄가 없습니다.
우리는 협의이혼과 재판이혼을 다 인정하지만 북한은 이혼률 억제를 위해 1956년부터 협의이혼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혼후 재산처분 문제는 여성이 위자료를 청구하는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위자료 조항이 없고 대신 여성의 재산분할권을 인정하고 있어요.
또 자녀양육권은 3세 미만일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엄마쪽이 갖게 되고, 이혼한 부모가 부담해야 할 양육비도 월수입의 몇 %씩을 부담해야 하는지를 북한은 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혼사유에 있어서도 차이가 큽니다. 예컨대 ‘부부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혹심한 배반’이라는 식으로 매우 추상적이예요.
▲양건 = 사회주의 국가의 법률에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뜻밖이네요. 재미있습니다.
▲곽배희 = 우리와는 약간 발상이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상봉시 제기될 중혼(重婚)과 재산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언제 이산가족이 됐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8·15해방, 6·25, 정전(停戰)후 등 이산 시점이 이산가족의 법적 지위랄까, 소유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지요.
같은 중혼이라도 북한으로 갈 기회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사람과 갈 수 없었던 사람은 해결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법무부나 통일부가 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전(實戰)경험이 전혀 없는 정부보다는 가족법에 관한 다양한 케이스와 연구실적을 갖고 있는 가정법률상담소 등 민간단체가 나서야 합니다.
이들 단체가 이산가족의 상담창구 역할을 하면서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이를 입법화 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이산가족 교류가 더 활성화하면 북한에 지부를 설치하는 것이 가정법률상담소의 희망입니다.
사진=최규성기자
사회·정리=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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