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서인도제도에 있는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 리코는 크기가 우리 충청남도만한 섬나라다. 그 섬 동쪽 끝에 ‘비에케스’라는 작은 섬 하나가 있다. 미 대서양함대 소속 항모전단의 실탄 포격훈련장으로, 요즘 갑자기 유명해진 이름이다.지난 6월24일 일단의 주민들, 환경운동가들이 이곳 포격훈련장에 무단 침입했다가 38명이 미군 당국에 체포된다. 바로 그 이튿날부터로 예정된 폭격연습을 육탄저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전함 5척과 항모탑재기들이 참가한 미군의 포격훈련은 25일 오후 2시 차질없이 시작됐다. 푸에르토리코 종교계 인사들과 정치인들까지 가세한 시위대는 어선에 나눠타고 훈련장 진입을 시도하거나 곳곳에서 철조망을 끊었다. 26일 밤부터 27일 새벽 사이에 모두 164명이 체포돼 수갑을 찼다.
비에케스 섬은 전체 면적의 4분의3이 미군 소유다. 지난해 4월 오발사고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이래 포격훈련장 반대시위는 “양키 고 홈”을 외치는 반미운동으로 악화돼왔다.
그보다 며칠 앞선 6월20일, 한국의 서해안에 있는 작은 갯마을 매향리에서 미공군 사격훈련장 진입_점거 시위가 진행됐다. 지난 5월8일 미군기의 비상폭탄 투하로 최근 사태의 진원이 된 ‘농섬’을 맨발로 걸어들어가 더이상의 폭격훈련을 막겠다는 것이 이 시위의 목적이다.
“20일 오전 11시20분, 농섬에서 6㎞ 떨어진 선착장에서 농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허벅지까지 펄에 빠지며 정신없이 걸었다. 입대를 앞둔 아우가 함께 해주어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한 매향리 사격장 반대운동가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본업이 성직자다. 그가 농섬에 접근해가는 동안 미군 헬기와 A10기의 ‘연습’은 계속됐다고 한다. 그는 5시간 걸려 농섬에 도착했고, 산에 올라 준비해간 7×5㎙ 짜리 대형 종이태극기를 펼쳤고, 경찰 헬기에 실려 나와 화성경찰서에 수감됐다.
수기는 ‘분노’와 ‘통곡’으로 얼룩져 있다. 표현은 거칠고 감정은 절제되지 않았다. 논리가 배제된 격한 언어들이 ‘이념적 협심증’을 벗어버리지 못한 세대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세대차’일지 모른다.
문제는 반미감정의 만연이다. ‘반미’까지는 아니라도, 미국을 보는 눈의 세대간 간극을 각성하게 하는 현상은 곳곳에 넘친다. 가령 이런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6·25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그들에게 주한미군의 존재는 무의식이나 관행으로 인정되기는 하되 인식으로 허락되기는 어려운 경우다. 미군이 왜 우리 곁에 왔으며, 왜 우리 곁에 계속 머물러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설혹 안다하더라도, ‘혈맹’관계를 인정하고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미행정협정 개정 협상을 앞두고 미국측이 제시한 개정안이 “협상을 안하자는 것이 아니냐”거나 “지나치게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측의 개정요구에 대한 ‘완곡한 거절’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미군범죄인 인도요구권을 주고, 경범죄의 경우 재판관할권 이양을 요구할 수 있으며, 한국정부가 범죄인 인도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협정의 관련 규정을 효력정지시킬 수도 있다는 저들의 협상안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근본부터 되새기게 하는 일이 된다.
한반도의 화해기류는 그렇지 않아도 주한미군의 지위를 재론하게 하는 상황이다. 매향리 주민이 생존권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미 10년이 훨씬 넘은 일이다. 매향리든 한미행협 개정이든 한미관계가 감정차원의 마찰로 진행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우리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듯이 보이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다음 주일 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일본 오키나와에는 39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한미행협 개정협상에서, 적어도 일본과의 협정수준만큼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에 더이상의 반미기류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