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공원이 '조각품 병동(病棟)'으로 전락해가고 있다.서울 송파구 40만평에 달하는 올림픽공원은 세계적인 거장을 포함한 66개국 작가의 작품 200여점이 곳곳에 늘어서 있는 국제적인 조각공원. 그러나 몰지각한 시민들의 낙서와 관리부재 등으로 태반이 훼손된채 방치돼 있고, 아예 원형을 잃어버린 작품도 상당수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조각가 세자르의 '엄지손가락'. 88올림픽을 기념해 6m짜리 세계 최대 크기로 제작된 걸작이지만 찬란하던 당초의 청동빛은 간데 없이 뿌옇게 변색된 흉물이 돼버렸다.
조각품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 무모하게 세제류 약품으로 닦아 온 탓이다. 더구나 세제 알갱이들이 주름 사이사이마다 박혀 있는데다, 훼손을 막는다며 그 위에 왁스코팅까지 하는 바람에 '원상회복'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저항의 시각'이라는 작품도 작품재료인 자연목에 대한 약품처리 방법을 몰라 시간을 끌다 결국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또 낙서가 가능한 재질에다 공간만 있으면 조각품 어디에든 낙서들이 들어차 있다.
'아프리카의 희망'이라는 작품에는 검은 매직으로 '애인 구함'이라는 글과 핸드폰 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고, 또다른 작품 '입방형의 모서리'에는 'god 짱'이, 갑옷 모양의 'BC XXXXL'작품에는 '○○는 △△를 ♡한다'는 낙서가 붙어있다.
합성수지가 주재료인 '나무 88'은 낙서에 따른 훼손을 더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철거될 운명에 처했고, 88올림픽의 대표적 상징물인 '세계 평화의 문'에도 포켓몬스터 스티커가 붙어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내에서 이곳 조각품 관리를 맡고있는 인력은 최성근 미술관 학예연구과장 이외에 비전문인력 3명이 고작.
최과장은 "88올림픽 기념행사로 기획돼 처음부터 야외전시를 고려한 작품들이 아니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면서도 "다양한 재료의 작품들이어서 보존처방을 처음 내려보는 것도 많고, 그 때마다 과연 이것이 맞는 방식인지 불안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미술관측은 나무나 대리석 등 훼손이 쉬운 재질의 작품들을 실내로 옮겨 보호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으나, 연간 1억원의 보수비로는 제대로 된 작품보호나 이미 망가진 작품의 복원에는 턱도 없는 실정이다.
안준혁 기자
dejavu@hk.co.kr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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