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을 보기위해 미국 여행을 했다. 그때 나는 미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행동에 제법 큰 감명을 받았었다.미국 북부 스포켄(Spokane)이란 곳에서 한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물건을 산 뒤 출입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려하고 있었다. 막 문을 열려는 찰나, 중년의 한 백인남자 역시 문을 밀며 들어오려는 것이었다. 평소 겸양을 자칭 처세철학으로 삼고 있는 나이기에 그곳에 서서 상대방에게 손짓으로 “먼저 들어오라”고 양보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 하지만 상대방 역시 멈춰서서 내게 “먼저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받아들일 턱이 없는 내가 거듭 “먼저 들어오라”고 여러차례 손짓을 하고 나서야 상대방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데 그는 매장 쪽으로 얼른 들어가지 않고 내가 문 밖으로 나갈 때까지 문을 꼭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누가 먼저 들어오고 먼저 나갔는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 일을 겪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혹시 스포켄이라는 지방이 “백인들이 많이 사는 북부 지방이어서가 아닐까”하는 회의가 싹트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부 애틀랜타에 들렸을 때 “에라, 여기서도 한번 시험해보자”라는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슈퍼마켓 출입문 밖에서 기다려봤다. 그때 한 백인 노파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그 노파 역시 몇번 동안 나와 서로 양보를 거듭하다가 결국 먼저 나오더니만 역시 내가 매장에 들어갈 때까지 문을 붙들고 서있는 것이었다.
아하, 이게 그네들 몸에 밴 습관이구나. 길을 오고갈 때나 똑같이 맞부딪쳐야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_ 어린 것들이 그럴 땐 정말 더 얄밉기도 하다 _ 언제나 ‘내가 먼저’이지 겸손하게 상대방에게 앞을 양보하는 미덕은 이제 더 이상 찾기 어려운 것이 몹시 자괴스런 우리 현실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의 문명인으로 자처하는 나로서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독자에세이에 원고가 실린 분께는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유한수·법무사·부산 중구 보수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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