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4일 논란거리인 국어의 새 로마자 표기법을 확정, 발표했다. 1984년 이래 16년간 쓰여온 표기법이 특수부호를 사용해야 하고 우리 말의 음가를 제대로 반역하지 못할 뿐더러 폭발적인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이용증가에 부응하지 못한 다는 것이 개정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로 관광진흥을 들면서 2001년 ‘한국방문의 해’와 2002년 월드컵 대회와 관련된 지역의 도로표지판과 문화재 안내판을 우선 교체하며 전국적으로는 2005년말까지 완료하고 교과서와 출판물은 2002년 2월까지 고친다한다.취지는 좋은데 실효성이 문제이다. 로마자 표기는 한국문물에 대한 외국의 이해를 돕는 것이 그 주목적인데 실수요자인 외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 국내 관련자들의 반응이 몹시 부정적이다. 1959년에 채택됐던 표기법(1차 문교부 제정 방식0이 독립문을 Dog_rib_mun으로 표기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초래해 큰 혼란을 야기했는데 이번 것이 그보다 개선되긴 했으나 그 뼈대는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984년 표기법(2차 문교부 방식)또는 그 근간을 이룬 매큔_라이샤워(M_R)방식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더 합리적인 방안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 시대의 요청이 있다해도 왜 하필이면 논란의 대상이던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그것도 충분한 내외 공론의 수렴없이 서둘러 ‘후퇴’하여 혼란을 또 초래하느냐가 비난의 초점이다.
1차 문교부 제정 표기법이 25년간 시행됐지만 실용성의 결여때문에 구미 국가들은 물론 국내 로마자(주로 영자) 신문·잡지등 출판물의 대부분도 이를 도외시했다. 국제적으로는 학술·군사 부문에서는 M_R표기법을 고수했고 일반 민관기구와 간행물은 그 표기법에서 문제가 되는 반달표( )와 어깻점(')을 생략한 간편법을 널리 써왔다. 그랬기에 88올림픽의 서울 유치가 성사하자 당시 정부는 실제 수요에 부응하여 1984년 표기법을 제정한 것이다.
새표기법을 따른다면 서울 울산을 제외한 전국 대도시와 김포 부산등 출입항의 로마자 표기가 변경되는데 세계의 항공·관광업계가 과연 순응할 것인 지 의문스럽다. 자칫 관광진흥에 역행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번 발표가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에 뒤이어 나왔는데 설사 한반도 긴장완화의 계기가 마련됐더라도 한미 연합사의 작전에는 지장이 없을 것인지. 과거의 예를 미뤄볼 때 미국측이 수많은 지도와 군사계획을 뜯어 고칠 것 같지 않다. 한국관계 연국가 국제적으로 활발해졌는데 외국학계가 새 표기법을 따르리라는 기대도 하기 어렵다.
주목할 일은 남북한이 1986년 이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주선으로 우리 말 로마자 표기의 합의안 작성을 논의해온 사실이다. 아직 이견이 남아있어 작년 7월 ISO 해당 분과위원회는 3년간의 검토기간을 거쳐 2002년에 최종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남북한이 모음표기에는 대체로 합의했으나 자음표기에서 북측은 ㄱ, ㄷ, ㅂ,ㅈ,은 M-R방식을 준용해 k, t, p, ch로 하되 ㅋ,ㅌ,ㅍ,ㅊ을 kh, th, ph, ch 또는 c로 표기하길 역설한 반면 남측은 1959년 방식, 즉 새 표기법에 따라 각각 g, d, b, j와 k, t, p, ch로 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이 1959년 방식 대신 이때까지 사용해온 84년 표기법을 제시하면 합의도달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ISO를 거치지 않더라도 6월 정상회담후 개선된 남북관계를 감안할때 로마자 표기의 공동안 작성을 위한 쌍무협의를 촉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북한이 공동안에 합의하고 이를 함께 시행하게되면 국내외 이용자들은 혼란을 겪더라도 따를 것이다. 이런 전망이 있는데도 문화관광부는 왜 어설픈 방안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라의 세계화와 민족통일 과업수행을 위해서도 최고통치자의 결단으로 새 표기법의 시행을 남북합의안이 채택, 제정될 때까지 유보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홍순일·전 코리아타임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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