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전 대통령 집에 바짝 붙여서 4층건물이 올라간다. 이 집은 다 짓기도 전에 유명해졌다. 매스컴을 타는 것은 설계가 뛰어나거나 겉모습이 아름다운 건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이 건물이 완공되면 대지 1,411평에 건평이 250평인 서울의 명물 99칸 윤보선가(서울시 민속자료 제27호)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이 건물은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을 두고두고 상징할 것이기 때문에 갈 수록 이름이 날 것이라는 뜻이다.■ 본래 건축법 시행령은 지정문화재 100㎙ 이내에 건물허가를 낼 때는 문화재청과 사전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999년 4월30일, 건축규제 완화로 이 조치가 해제되면서 사전 심사제도가 폐지됐다. 선진외국처럼 여러 상황을 가상한 단서조항도 만들지 않았다. 문화재법 20조는 시도 지정문화재나 국가지정문화재 구역 안에 들어설 건물만 문화재청과 사전협의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문화재와 바짝 붙여서 건물을 지어도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게 됐다. 관할 종로구청은 2000년 4월1일 윤보선가 바로 옆에 건물을 짓겠다는 신청서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6개 단체는 ‘윤보선가 보존을 위한 시민청원단체’를 구성했다. 이 단체는 윤보선가를 비롯한 인근의 전통한옥들을 보호하자는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신문 방송이 이 목소리들을 보도해도 ‘현행법에 하자가 없다’는 구청의 대답은 한결같다. 서울시도 구청 일을 떠맡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잘못하면 많은 돈으로 신축건물을 사들여 해체해야 할 판이다.
■고 건 서울시장과 정흥진 종로구청장을 포함한 모든 서울시민은 매일아침 얼굴을 씻는 것이 일상이다. 자신들의 얼굴은 열심히 씻어내는 그들이지만, 정작 서울의 얼굴이 훼손되는 데는 관심이 적다. 사람 몸에 비유하면, 안국동과 가회동 등에 마지막 남은 한옥마을은 500년 전통을 알리는 서울의 얼굴이라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오늘도 책임있는 공직자들에게 절박하게 묻는다. 청와대 담장에 바짝 붙여서 고층건물을 세워도 현행법에 하자가 없으면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
/최성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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