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따금씩 막힌 숨통을 튼다. 소외된 곳을 찾아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 박영순(46) 윤호병원 안과원장도 그렇다. ‘열린 의사회’의 무료봉사단을 이끌고 정기적으로 국내외 낙후지역을 돌보고 있는 박원장이지만 스포츠계에도 그동안 적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경기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시력교정술(라식)이 그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서는 무료 시력교정수술을 평생사업으로 하겠다”는 뜻을 최근 공식적으로 밝힌 박원장을 만나봤다.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 시력이 나쁜 선수가 라식수술을 원할 경우 무료시술을 해주겠다고 자청해 선수들이 무척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스포츠중계를 자주 보는 편인데 96년 애틀랜타올림픽때입니다. 유도 중계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김민수선수(100㎏급)가 경기중 렌즈를 분실해 매우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본인의 심정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겠죠. 그래서 대표단이 귀국하는 즉시 연락을 취해 시력을 회복시켰습니다. 평소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고 도움을 줄 특기가 있다는 자체에 큰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국위선양을 위해 애쓰는 대표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합니다.”(박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대표선수가 아닌 운동선수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습니까.
“마음같아서는 전국의 모든 해당선수에게도 혜택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수술에 소요되는 기본비용이 있는데다 무료시술 대상자도 체육계만이 아니기때문에 힘듭니다. 대상선정을 놓고 사전에 대한체육회와 상의한 결과 대표팀 선수로 정했습니다.”
▲라식수술은 세계적인 프로골퍼인 타이거 우즈, 로라 데이비스, 박세리 등이 받으면서 일반에 더욱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경우 수술후 경기력 변화에 대한 체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시력이 나쁜 운동선수들이 의외로 아주 많더군요. 이들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경기때 렌즈를 착용해야 하는데 흘러내리는 땀 또는 렌즈에 부적절한 눈때문에 대개 렌즈를 못끼고 감에 의존했다고 합니다.
육상의 높이뛰기 대표인 이진택선수는 시력이 2.5디옵터인데 수술을 받기전까지 바의 높이를 어렴풋이 측정한 상태에서 뛰어넘었답니다. 수중발레 대표인 유나미선수는 난시가 심한 편인데 듀엣연기때 렌즈를 끼고 물속에서 사인을 주고받기가 어려워 실수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또 쇼트트랙의 안상미선수는 렌즈를 끼면 차가운 얼음바람때문에 눈뜨기가 어렵고, 배드민턴의 이순득선수는 스피디한 경기특성상 렌즈를 착용하지 못하는 등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 운동을 해왔더군요. 지금은 상대 또는 물체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어 한결 수월하다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무료로 시술해 주다보면 수입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텐데요.(웃음) 지금까지 무료시술자 수가 얼마나 됩니까.
“15개종목에서 50여명의 선수가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호응이 별로였다가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는 만큼 비용문제는 개의치 않습니다.”(라식수술은 시력여하에 따라 비용차이가 있지만 대개 300만원 안팎이다)
▲97년 9월 몽골인 3명을 초청해 무료개안수술을 해주는 등 대표선수 이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무료수술을 많이 해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속해 있는 ‘열린 의사회’는 97년부터 1년에 2차례씩 한국일보사와 일간스포츠 주관으로 몽골, 미얀마 등에서 무료진료를 해오고 있습니다. 현지 치료가 힘든 환자는 국내로 초청해 수술을 해줍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 차례씩 국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주로 장애인시설, 민통선 이북지역 등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갑니다. 저는 제 분야의 환자를 찾아 증상에 따라 현지치료 또는 병원 초청치료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열린 의사회’가 어떤 단체인지 다시 한번 소개를 해주십시오.
“각 분야의 전문의들로 구성된 무료봉사 단체입니다. 96년 12월 저를 포함한 친한 의사 5명이 연말 모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사회에 좋은 일을 해보자’고 이야기가 나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준비작업을 거쳐 이듬해 3월 작은 규모지만 일단 정식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회원수가 전문의 50명, 자원봉사자 50명이 될 정도로 많이 늘어났습니다. 재원은 그동안 자체적으로 조달해 왔는데 갈 수록 회원 개개인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어나 올해 법인으로 등록했습니다. 법인이 되면 스폰서를 구할 수 있어 회원들의 부담을 다소 줄어듭니다.”
■박영순은 누구
할아버지(박유신·작고)가 서울대 치대학장을 역임했고 작은아버지(박상복·65)가 미국 피츠버그 알레게니병원에서 심장외과 부과장으로 활동중인 의사집안에서 태어난 서울토박이.
80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83∼86년 인제대 의대부속 백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수료, 87∼92년 강남병원 안과과장 역임후 92년부터 서울 압구정동 소재 윤호병원 안과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눈은 말한다’‘눈은 어떤 질병에 걸리나’‘굿바이 안경’ 등이 있다.
남재국 기자
jknam@hk.co.kr
사진=김재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