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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파국없는 타협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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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파국없는 타협 불가능한가

입력
2000.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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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의 파업사태를 이렇게 보도했다.외국언론에 비친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누구나 개혁을 외치지만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는 개혁은 결사반대하는 것이 오늘의 풍토다.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나 마찬가지다. 지도부는 삭발부터 하고,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투사처럼 행동한다. 머리는 왜 깎는지, 머리띠는 왜 모두가 빨강색인지, 분위기를 돋우는 동작까지 왜 똑같아야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 이해 못하는 채로 온국민이 그 문화에 물들어서 여차하면 머리띠를 매고 구호를 외칠 준비가 되어있다.

오늘 파업사태의 주인공인 의사 약사 은행원들은 대부분 '6월항쟁 세대'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이끌던 민주화 투쟁에 화이트칼라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당시 상황에서 힘든 결단이었다. 더이상은 못참겠다는 공분(公憤)으로 위협과 불이익을 각오한채 그들은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그 뜨거운 체험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우며 바리케이드앞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것이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집단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에서 누구도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 지역주의나 편중인사도 따지고 보면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다. 이기주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에게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약분업이나 금융개혁은 예견된 분쟁이었다. 그러나 사전협상은 성공못했다. 파국에 이르러야만 해결책이 나오니 해결을 위해서 우선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과의 마늘분쟁은 정부의 협상능력 부재를 적라라하게 보여준다. 연 9백만불 정도인 중국산 마늘 수입을 줄이려고 관세를 10배나 올렸다가 5억불에 이르는 무선전화기와 폴리에틸렌 수출 길이 막힐뻔 했던것이 마늘분쟁의 내용이다. 마늘수입 억제책은 총선을 앞두고 농촌의 표를 의식한 당정의 합작품으로 내 이득만이 중요하다는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중국정부가 한국산 무선전화기와 폴리에틸렌 금수조치를 내리자 우리정부는 허둥지둥 협상을 청해 전에 없던 마늘수입 쿼터까지 받아들였다.

각 집단의 이기심을 통제하려면 정부가 협상능력을 가져야 하고, 원칙이 확고해야 한다. 과격한 실력행사를 해야 뭔가 얻어낼수 있다는 풍조를 깨야 한다. 빨리 수습하려고 미봉책을 쓰면 얼마 안가서 그 꿰맨 자리가 터지고, 그때는 더 큰 댓가를 치르게 된다. 파국이 오기전에 이익집단들의 주장을 조정하고, 일단 원칙이 섰으면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의약분업과 금융개혁은 국가적 과제"라고 말하고, 불법파업에는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입장표명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김대통령은 지난 6월말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하자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긴급제안을 받아들여 의사들이 요구해 온 약사법 개정에 합의했다. 여야협조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우세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싱장갑을 끼고 줄을서서 링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노조와 이익집단들 앞에서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다.

김대통령은 그 직전까지 '법대로, 원칙대로' 파업에 대처하라고 정부를 독려했다. 야당총재의 긴급제안에 응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방향전환은 관계부처를 무색하게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의문을 제기했다. 약사들의 임의조제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요구가 옳았다면 왜 사전에 반영하지 않았는가. 의사들의 파업으로 위급환자들이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사태는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파업사태는 김대중정부가 부딪친 가장 큰 시련이다. IMF는 온국민이 한마음으로 극복했지만, 파업에는 여러 집단의 이해가 걸려있다. 김대중정부는 노조를 잘 관리할줄 알았는데 실망했다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또 노조안에는 IMF 극복의 과실을 특정계층이 차지하고 자신들은 희생자로 남았다는 상실감이 팽배해 있다. 국민은 갈등을 수습하는 정부의 진정한 실력을 고대하고 있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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