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 30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0. 모란공원 묘원 개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공무원의 근무시간과 비슷하다.그러나 우리 삶이 이 순간만을 죽음을 위한 시간으로 마련한 것은 아니다. 죽음은 오히려 새벽 4시나 밤 11시 쯤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울리는 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순간 죽음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현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진정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_지극히 예외적인 몇가지 경우, 즉 죽었다 다시 깨어났다던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왔다던가 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다_ 일생에 단 한번 뿐이다.
진정 단 한번 뿐이던가. 우리 삶에는 과연 단 한번만의 죽음만이 있던가. 죽음은 일회(一回)적 사건이기에 그 나머지의 시간은 과연 살아있음의 몫이던가.
살아가는 날이 많을수록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자연의 진리는 죽음이 곧 삶의 구성요소라는 말은 아니던가.
미술관과 공동묘지. 앞의 것이 삶의 흔적을 기록한다면, 뒤의 것은 죽음을 전시하는 곳이다. 산 자들의 삶의 흔적은 매우 다양하여 슬픔을, 노여움을, 환희를, 열락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지만 죽은 자의 죽음은 모두 비슷한 형태로 전시된다.
모란공원의 무덤은 모두 2,000기. 모두 분양이 끝났고, 아직은 주인이 찾지 못한 곳도 눈에 띈다.
불경스럽게도 이 죽음의 전시 공간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이국적 정취의 토포스(Topos·장소)다.
산 자들이 사느라고 가까이 하지 못하는 풍족한 자연을 죽은 자들이 점거하고 있다. 7월의 묘원에는 나무가 풀들이 만개하여 인부들은 부지런히 묘역을 단장한다. 미관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배려다.
따가운 햇살이 아니라면 이 곳에는 좀 더 많은 산보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무덤 대신 차가 다니는 도로를 산책하기 시작하여, 조금 지나면 아예 무덤 곁으로 들어가 묘비명을 읽기도 하고, 추석 무렵이면 비닐로 포장돼 묘비 옆에 붙어 있는 ‘관리비’ 독촉장을 읽어 내리기도 한다.
연간 안치료 2만원, 관리비 2,000원. 죽음이 ‘관리’의 대상이었던가. 하지만 무덤은 관리의 대상이기에 후손들이 납부하지 않으면 그들은 체납자 신세다.
이런 새로운 경험의 공간인 공동묘지, 이곳은 학습의 공간이자 새로운 지식의 공간이다. 때로 무덤 가에선 ‘나’처럼 불경스런 섹스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죽음은 무시무시하지만 혹은 무시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주검이 주는 우울은 때로 화려한 공간이 주는 즐거움에 의해 상쇄되기도 한다.
‘입장료 2,000원. 웨딩 촬영 2만원’.
모란공원의 입구는 두 곳이다. 왼쪽은 미술관, 오른쪽은 묘원. 동물원과 미술관의 만남 만큼이나 미술관과 묘지의 만남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근사한 미술품을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은 울창한 수목 뒤편에 수많은 묘소가 있다는 사실로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절정에 다다른 삶의 욕망은 죽음의 금기를 넘어설 만큼 강렬하다.
욕망은, 순수한 욕망은 매우 치명적이다.
‘나는 지금 목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결혼 이후 15년간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나의 동서의 장례식이 열린다.
서적 도매상이었던 그를 나는 ‘형님’이나 ‘동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지금은 별거 중인 나의 아내의 형부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의 삶은 사는 데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시키느라 허비된다. ‘내 집 가진 후에 즐겨도 안 늦는다’.
언제나 그의 입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그에게 아파트 한 채는 그의 모든 욕망의 상징체였다. 아파트가 아니고서는 그의 욕망은 해갈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를 마련한 그가 정작 몸을 누인 곳은 아파트가 아닌 목련공원이었다.
그러나 삶의 욕망으로 죽음에 먹힌 것은 ‘나’의 동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거나 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허기진 사람처럼 거칠게 서로의 몸을 탐했다.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그 밤은 내 평생의 기억 가운데 가장 뜨겁고 황홀한 밤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뜨겁고 노련한 여자를 만나보지 못했었다.
나는 몇번이나 혼절할 뻔 했고,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사육하는 그 덩치 큰 사마귀를 떠올리곤 했다’. 그녀는 미술관 옆 카페의 주인이었고, 나는 우연히 그녀를 만났으며, 우연히 동침했으며, 우연히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한 번의 정사로 목숨을 내놓는 수컷 사마귀처럼 깊은 욕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를 만나서 거칠고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몸을 떨며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욕망은 허락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울타리를 뚫고 나간 허락되지 않는 욕망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을 확률이 크다.
검은 상복을 입은 창백한 여성의 얼굴에서 안쓰러움과 동시에 묘한 에로티시즘을 느낀다면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삶의 증거이자 삶의 욕망인 에로티시즘은 타나토스(죽음)와 매우 부적절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욕망이 무서운 것은 그 결과를 몰라서도 아니다. 그 욕망의 목구멍에 머리를 박아 넣을수록, 죽음의 순간도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는 있다.
에로스를 껴안을수록 타나토스의 애무가 더욱 강렬해진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내재된 삶의 욕망과 죽음의 욕망이 어찌보면 하나의 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므로.
▥ 이승우 약력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서울신학대 졸업.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중퇴
▲1981년 ‘에릭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93년 장편 ‘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
▲소설집 ‘세상 밖으로’(1991) ‘미궁에 대한 추측’(1994) ‘내 안에 또 누가 있나’(1995), ‘목련공원’(1998) 등
▲장편 ‘따뜻한 비’(1991) ‘황금가면’(1992) 등
글=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승우의 작품세계
인간 실존·구원 화두로 새로운 종교문학 모색
막연한 해답에서 구체적인 질문으로.
그의 모습은 달랐다. 이전 여러 책의 표지나 신문 기사에서 그의 모습은 강퍅하고 조금은 성마른 듯한 지식인 소설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그를 수식하던 후광을 스스로 벗어 버렸기 때문일까, 초등학생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일까.
종말론에 탐닉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1981년 ‘에릭직톤의 초상’으로 데뷔, ‘스물두 살의 청년’이라는 찬사와 함께 화려하게 평단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1년은 신학대학에 재학 중이던 작가에게는 충격에 휩싸인 한 해였다.
그해 5월 교황 저격 사건에 충격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 바로 ‘에릭직톤의 초상’. 에릭직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神) 아이디어즈가 아끼는 나무를 도끼로 잘라버린 인물. 신은 그에게 배고픔의 형벌을 내렸고, 그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자신의 살을 뜯어 먹다 죽게 된다.
신에 귀의하지 않는 인간, 그 인간을 그린 작품으로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엔 희박한 종교 문학의 새로운 한 전형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후 그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더 탐닉했다. 지배와 복종의 메커니즘에 대해 그는 집요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필요가 만들어 낸 허상의 권력에 복종하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린 ‘미궁에 대한 추측’을 통해서도 지식인 소설가의 면모를 보였다.
‘생의 이면’에서는 가상의 작가 박부길의 내면의 성장사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렸다.
어머니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박부길은 강한 모성을 가진 한 연상의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신과 조우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실존, 구원 등의 화두를 쫓아온 이 작가를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관념의 토르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궤적에서 보면 단편 ‘목련 공원’은 다소 생뚱해 보인다. 작가 스스로는 이런 작품들을 이제 “관념적 형이상학적 도그마가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가는 것 자체가 궁극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선문답(禪問答)의 원리와 같다.
작가는 이제 “차마 다루지 못했던 것”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은 구원이나 해답에 이르지 못한다.
젊은 시절에 내린 해답, 뒤늦은 질문. 순서가 거꾸로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이것이 어쩌면 새로운 모색, 변증법적 합일에 이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문학이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카뮈나 카프카의 후예로서의 그의 문학적 주소도 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좀 생활인이 되려 한다. 자신이 죽어서 들어갈 관 속에서 잠을 자는 사내의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도 종교가 아닌 주술 수준의 문학에 갇혀 버린 우리 종교 문학에 작은 변화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는 이제 죽음을 생각하는 데 방부제 처리한 머릿속이 아닌 서서히 노화하는 육신의 문학으로서 파헤쳐 볼 생각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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