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많은 재벌 경영인들이 발빠르게 경영구조를 개혁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젊은 재벌 2세가 앞으로 10년 혹은 15년 안에 현행 재벌체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거대재벌들의 자체 개혁이 타의든 자의든 시작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빨리 우리 재벌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하여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그런데 자식에게 모든 걸 물려주는 풍습이 종교계에도 번져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아온 빌리 그레이엄 전도사마저 아들에게 그의 ‘기업’을 물려줘 우리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물론 물려줄 수 있는 이들 중 본인의 자식이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되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결코 혼자만의 기구가 아닌 공동체를 족벌세습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 인간과 흡사하게 최고통치자를 모시고 사는 개미들의 세습제도는 어떠한가. 개미제국의 성공은 그 제국의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차세대 여왕개미들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느냐에 따라 가늠된다. 일개미들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오로지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여왕개미와 수캐미들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거대한 규모의 군락을 형성하고도 차세대 여왕개미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 개미제국은 자기 몸 가꾸기에만 열심이고 자식을 낳지 않는 여인과 다름없다.
따라서 개미제국의 연중행사 중 혼인비행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혼인비행 절기에 개미집 앞에서는 마치 출발 총소리를 기다리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웅성웅성 모여있는 여왕개미와 수캐미들을 볼 수 있다. 일개미들은 무엇을 재는지 연신 더듬이들을 꼿꼿이 세운 채 바삐 돌아다닌다. 어떨 때는 며칠씩 그렇게 웅성거린다. 다른 군락에서는 여왕개미와 수캐미들이 날아 나오지 않는데 혼자 내보냈다가는 일년 농사를 하루아침에 망치는 격이라 매우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그렇게 정성스레 키운 여왕개미들도 혼인비행을 떠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도 어머니의 왕국으로 돌아와 권좌를 물려받지 않는다. 중남미 열대에서 나뭇잎을 끊어다 버섯을 경작하는 잎꾼개미의 경우 혼인비행을 떠나는 어린 여왕개미들에게 씨버섯을 조금씩 지참금처럼 쥐어주기는 해도 아무도 다시 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줄 뿐 평생 뒤를 돌보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다. 아마 개미들이 우리네 재벌들처럼 눈먼 세습을 했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자연계의 지배자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에게 권좌를 물려주는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박이 하이에나’의 세계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은 암컷의 딸이 통치권을 물려받는다. 말들의 사회에서도 으뜸암말의 자식들이 큰 일이 없는 한 계속 권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는 기업으로 말하자면 가내수공업 또는 기껏해야 중소기업 정도이다.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는 세습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많은 성원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꾸려야 하는 대기업들도 투명한 전문경영인이 아니고는 더 이상 이끌 수 없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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