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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막후]알과 핵 '빨간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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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막후]알과 핵 '빨간 트럭'

입력
2000.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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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인 사회 풍경은 때로 이곳의 실상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반면교사다.알과핵의 ‘빨간 트럭’이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미국 동포 사회의 실태를 사실주의 정공법으로 재현한 극이다.

우선, 전통적 가치와 규범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이민 2세의 생활 모습이 적나라하다. 광란의 레이브 파티를 즐긴 딸 써니가 교포 2세와 트럭 운전석에서 뒤엉켜, 허공에 버둥대는 두 다리는 그들의 실종된 가치관이다.

극은 그것이 백인의 공식 문화에서 탈락된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적 선택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말한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산하는 그들. 지독한 환멸을 느낀 제니. 써니의 언니다. 그녀는 차고의 문을 잠그고 차의 시동을 걸어 조용히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의사면허증으로 갑부의 딸을 아내로 맞아 미국서 개업한 아버지, 잊을만하면 터지는 그들 부부의 격렬한 싸움. 한국어, 영어로 지독한 비속어가 남발되는 집안이었다.

무대 우측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빨간 트럭은 지난 시절, 이 가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제는 철부지들의 밀회나 부부싸움 장소로 전락했다.

작자 윤승중(53)씨는 “94년 LA 라하브라시에서 보고 느꼈던 이야기”라며 “한국인에게 주는 물신주의의 경고”라고 말했다.

윤씨는 이번 무대에서 기획 제작은 물론 닥터 현으로도 출연, 1인 4역으로 능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LA에 거주 중인 그는 “미국에서 극작_한국에서 상연 형식을 앞으로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연출가 송미숙(42)씨는 “발랄함만이 전부인 양 부각되는 요즘, 사실주의는 차라리 개성적인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현실 모방, 현실 비판의 도구로서 리얼리즘 극 본래의 효용성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것은 출연진의 숙달된 연기다.

김인수 차유경 등 중견들의 연기 대결이 뜨겁다. 동포 사회에 만연한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 가족해체의 모습이 생생한 ‘빨간 트럭’은 우리 생활 속의 개봉박두편으로서도 유효할지 모른다. 30일까지 알과핵 소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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