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한국에 있었다면 투수로 계속 활동하고 있을까. 한양대시절 박찬호를 지켜본 야구인들이 한결같이 제기하는 의문중 하나다.당시 컨트롤이 형편 없어 과소평가된 박찬호가 국내에서 뛰었다면 아마도 들쑥날쑥한 컨트롤 때문에 소문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93년 한양대 2학년이던 박찬호가 던진 시속 158㎞ 직구는 국내야구에서 제일 빠른 볼이다.
그러나 컨트롤이 엉망이었다. 93년말 다저스는 장래성을 높이 평가해 그를 데려갔다. 94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시즌 오픈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사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실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다저스가 박찬호를 데뷔시켰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훗날을 내다본 다저스의 심모원려였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는 볼만 빠르게 던져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다저스 산하 더블 A팀 샌 안토니오에 둥지를 튼 박찬호는 담당코치와 순회코치의 지도로 진짜투수로서 틀을 잡아나갔다.
선발투수로 키우기 위해 지구력을 강화시키고 5일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면서 컨트롤을 잡는데 주력했다. 부상방지와 볼스피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투구밸런스를 유지하도록 이끌었다.
밸런스가 틀어지면 힘있게 볼을 던질 수 없고 몸과 팔이 따로 놀아 몸에 무리가 오게 마련이다. 밸런스가 맞고 볼을 놓는 포인트가 일정해지면서 컨트롤이 서서히 잡혔다. 여기에 떨어지는 커브를 익히게 했다.
주목할 점은 제구력과 변화구를 불펜에서 익힌 게 아니라 경기를 통해 터득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자견제, 1루베이스 커버, 번트수비 등도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배웠다.
박찬호가 올 시즌 기대만큼 성적을 내고 전반기를 마무리 한 이유도 마이너리그에서 익힌 기량이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선수나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들이 기본기를 무시해서는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없다.
투구폼도 완성되지 않은 선수들이 승부에 집착, 기본을 무시하고 변화구부터 던지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박노준 경인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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