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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통치 불가능성'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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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통치 불가능성'의 사회

입력
2000.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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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치시계는 항상 세계의 시간과 약간씩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냉전의 해빙이 한반도와 외부세계와 사이에 시간적으로 어느정도 간격이 있었는지 상기해 봄직하다. 지난 세기에 극성을 부렸던 좌우익의 논쟁도 그렇다. 한세기를 조감하여 보면 대략 일정한 간격을 두고 좌우 어느 한쪽이 번갈아서 패권적이라고 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패권’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실제 정치에서 권력을 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담론에 있어서 지배적인 중요문제들을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와 세계 주류의 경향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대략 10여년의 간격을 두고 바깥 세상을 뒤쫓아가는 유형을 볼 수 있다.다른 이야기지만 ‘통치불가능성(Ungovernability)’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시간의 간격이 크다는 사실이 시선을 끈다. 얼마전 유례없는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고, 의사협회의 파업주동자들에 대한 검찰의 조치를 둘러싸고 새로운 파업의 이야기도 나왔다. 이어서 금융파업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어찌 의사나 은행종사자들 뿐이겠는가. 약사들도 들먹이고 있고, 문제에 따라서 사회에 결정적인 불편을 줄 수 있는 파업 후보자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 1970년대의 유럽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정치학자들이나 시사평론가들이 자주 쓴 용어중의 하나가 현대국가의 ‘통치불가능성’이었다. 말하자면 국가가 제대로 통치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제는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 원인의 진단도 갖가지였고 따라서 처방도 여러가지였다. 1980년대에 가서 이 말은 정치용어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 현상과 밀접히 연관된 것 중의 하나가 유럽통합의 진행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에서 논외로 하려한다.

통치불가능의 근본원인은 세계화와 산업화이다. 여기에는 물론 정신적인 혹은 도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예전처럼 국민들에게 강한 충성이나 희생을 요구하기 어렵게 된 측면이다. 사회는 예전보다 훨씬 더 다원화하고 다양한 세력들이 제각기 적극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주장을 펴는 반면 국가는 점점 더 이들응 통제하기 어렵게 되며 국제화한 세력들은 국가의 주권을 잠식한다.

역설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람들은 국가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요구와 기대를 하게 된다. 수도나 전기의 공급에서부터 축구시합에서 이기는 것까지 모든 것이 국가의 부담이 된다. 국가는 이에 따라 행정기능을 계속 확장해 가지만 국민의 기대에 따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행정기구 자체가 비능률의 원인이 되며, 국가의 통치불가능성을 부채질한다. 가장 큰 원인은 현대처럼 산업이 고도로 상호 연관된 사회에서 에너지, 통신, 교통, 금융같이 중요한 부분 하나가 전체 사회에 일종의 비토능력을 갖는다. 이런 부분 하나만 파업을 하더라도 전체 사회가 마비되든지 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국가는 부분적 이해관계를 통합하여 국가의 종합적 이해를 창출할 능력을 잃고 강력한 기능 집단에 끌려 다니게 된다.

실제로 1970년대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이 국가의 통치권에 도전하여 공권력을 무색하게 만든 일도 있다. 그래서 ‘구심정치(Centripetal Politics)’, 즉 정부가 강력한 집단들과 협의에 의하여 사회계약을 창출하여 정치를 운영하는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1980년대에 등장한 것은 대처주의, 즉 자유경제와 강력한 국가의 결합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어서 터지는 강력한 집단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그저 종전의 방식으로 사안별 대처를 하고 있다. 한국이 이제서야 탈근대적 통치불가능의 상황을 경험해야 한다면 한국식의 해결방향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라종일 경희대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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