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생각] 자유와 지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생각] 자유와 지주

입력
2000.07.10 00:00
0 0

남녘 땅에 ‘자주’ ‘민중’ ‘인민’ ‘노동’ ‘동무’같은 말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다른 까닭은 없고 체제와 이념이 다른 북녘 땅 우리 동포들이 즐겨 입에 올리는 말이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북녘 땅에 ‘자유 ’ ‘시민’ ‘대중’ ‘개인’ ‘친구’같은 낱말을 낯설게 여겨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저항감을 느끼는 말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에둘러 다른 표현을 쓰지 않고 꼭 그 낱말을 써야할 경우가 있다. ‘자유’와‘자주’ 같은 말이 그런 낱말 속에 든다.

우리는 ‘자유’라는 말을 거저 배워 익힌 것이 아니다. ‘자유’라는 말에는 노예제도와 신분질서라는 예속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긴 세월에 걸친 인류의 피어린 투쟁이 응결되어 있다. 해방 이휴 남녘 사회에서만 국한시켜 보더라도 ‘자유’의 역사에는 고문과 학살, 분신과 철창의 악몽이 드리워 있다. ‘자주’라는 낱말도 마찬가지다. 이민족에 의한 압제와 식민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던 약소민족의 한이‘자주’라는 낱말 안에 구비구비 서려있다. 하루 아침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하룻밤 사이에 도시가 잿더미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약소민족의 처지에서 어찌 ‘자주’를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한 ‘자유’와‘자주’는 양보할 수 없는 삶의 지표다. 이 지구상에 타율의 강제에 의해서 제 한 목숨 부지해나가는 생명체가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 자기 힘으로 자기 삶의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는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없다. 생명체가 생명체로서 제 구실을 하려면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한다.

산업화 이후 근대 제도교욱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현상은 동서와 남북을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자기 삶의 시간을 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 스스로 통제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현상이 더 심화되어 심지어 두세살짜리 아이들까지 부모와 국가의 통제 아래 외부에서 강제된 타율의 시간을 내면화하고 있다. 제도에 의해서 그리고 제도권에 편입된 어른들에 의해서 아이들에게 스무해가 넘게 강제되는 이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 아니다. 생명의 시간이 아닌다. 그것은 시침과 분침으로, 요일과 달로, 학년과 학제로 구별된 인공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다른 어떤 생명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자유’를 외면하고 ‘자주’를 등한시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자유’와‘자주’를 근원에서 지켜주는 자연의 시간, 생명의 시간에서 분리된 인공의 시간표에 의해서 인간 행동과 의식을 제도화하는데 급급했던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탓을 돌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은 국토가 통일되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될 그날까지 남과 북이 다함께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이 목표가 ‘이성적 합의’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착가하지 말자. 분단은 우리 몸에 우리 감성에 이성만으로는 치유될 길이 없는 깊은 상처와 앙금을 남겨놓았다. 지난 이산가족 상봉 때를 상기하자. 만나는 사람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없다. 그냥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우는 것이 말을 대신한다.

그냥 울게하자. 그리고 같이 울자. 그러고 난 뒤에 ‘자유’와 ‘자주’의 가치를 확인해도 늦지않다. 감성의 물꼬가 트여야 이성의 물길이 열린다.

/윤구병·철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