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당초 우려와 달리 차분하게 마무리됐다. 준비단계에서 헛된 자리다툼과 분별 없는 ‘사법부 길들이기’ 태도로 지탄받은 정치권이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을 평가한다. 대법관 후보의 총체적 자질검증에는 크게 미흡했다는 중론이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도 크다고 본다.중요한 것은 사법부와 입법부 모두 청문회를 무난히 치른 것에 자족하지 않고, 각기 본연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축적된 경험과 준비부족 탓으로 ‘통과의례’에 그쳤다는 비판에 유념한다면, 생소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뜻을 살릴 수 있도록 반성과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당이 비호에 급급하거나, 야당이 헐뜯기에 매달리지 않은 것은 사법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의 본뜻을 깨달은 결과로 본다. 그러나 대법원이 전에 없이 단호한 처벌의지를 천명한 선거사범 재판을 의식해 일부러 변죽만 울렸다는 뒷얘기는 듣기에 씁쓸하다. 국민의 직접위임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다룰 대법관 후보의 독립적 자세와 자질을 검증해야할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국민 대표기관의 막중한 권한과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후보 개인의 신상이나 전력보다는 가치관과 법철학 등을 물은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설 ‘죄와 벌’ 따위를 소재로 삼은 것은 이를테면 법과대학 면접시험에서나 거론할 유치한 수준이다. 사회적 쟁점에 관한 최종 가치판단권을 갖는 대법관 후보의 가치관과 성향을 검증하려면 폭 넓은 쟁점을 다룬 판결기록을 바탕으로 소신과 견해를 따져 물었어야 했다.
이는 국회의원들의 청문회 인식과 준비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자유와 권리의 수호자인 사법부, 그 최후보루인 대법원의 판결성향 등을 분석한 자료가 빈약한데도 원인이 있다. 우리 사회는 사법부 신뢰회복을 외치면서도, 대법원의 성향과 구성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대법관 후보의 자질을 막연히 검증하는 것이 겉핥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제약을 벗어나려면, 재야법조계나 시민단체에 앞서 법학계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고고(孤高)한 틀 안에 은둔하던 법관들이 국민앞에 나서 소극적이나마 다양한 면모를 검증받은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됐을 터이고, 국민은 법관이 국민과 공익에 봉사하는 공복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사법부는 국민에게 다가선 인사 청문회를 신뢰회복의 디딤돌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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