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중李世中·변호사·前대한변협회장
유장희
柳莊熙·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사상 초유의 의료계 집단폐업에 이어 금융노조의 전면파업으로 인한 금융대란이 예고되는 등 우리 사회는 전례없는 혼란에 직면해있다.
정부 조차 이같은 혼란에 우왕주왕하는 등 우려스러운 국정난맥상의 원인과 타개방안을 모색하기위해 시민운동에 오래 관여해온 이세중(李世中)변호사와 경제전문가인 유장희(柳莊熙)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의 시국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궤도를 벗어난 집단이기주의는 사회 전체는 물론 당사자들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부메랑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며 양보와 협상을 통한 윈윈전략을 당부했다.
정부측에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개혁프로그램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정난맥상 원인진단
▲이세중 = 의사폐업이라든가 금융노조의 파업문제 또 국민건강보험노조의 극렬한 파업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년전 IMF때보다 더 심각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라는 우려와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유장희 = 그나마 IMF때는 ‘큰 일 났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위기의식도 해이해지고 개혁도 더 할게 없다는 식의 소위 개혁불감증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적정속도를 벗어난 성장때문에 국민들이 현혹돼 경제위기가 끝났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된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현 경제성장은 경제구조를 개혁해 내실을 탄탄히 다진 결과가 아니라 정부가 우선 경제활력을 살려놓고 보기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무리한 지출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정치적으로도 집권초의 밀월여행이 끝난 상태고 원자재가격 급등 등 대외여건도 좋지않습니다.
▲이세중 = 현 국정난맥의 바탕은 정부가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고 바꾸고 알리고 집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일관성없이 이뤄진 탓이 큽니다.
조급하게 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되기도 전에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나오면 금방 바꿔버리는 원칙없는 행정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정책을 바꾸면 이익집단이 ‘나만 피해본다’며 폭력까지 동반한 과민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유장희 =정부는 그동안 금융 재벌 노사 공공 등 4개 부문의 개혁을 주도해왔는데 어떤 식이든 중간점검을 할 때가 됐습니다.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작업이 예상대로 안되고있는 것은 국민에게 예측가능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정치권의 발목잡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세중 =의료진의 집단폐업때만 해도 당연히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엄중 대처했어야 했습니다. 의사가 집단폐업해 국민 생명을 외면한 처사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가 폐업하는 마당에 약자인 노동자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지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집단이기주의
▲이세중 = 집단이기주의가 요즘처럼 극에 달한 경우는 과거에 없던 일입니다. 특히 국민생명을 책임진 의료진이 폐업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것은 선진국이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기 힘든 일입니다.
▲유장희 = 의료대란때도 의사들이 법의 시행을 막으려고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데 정부도 의사협회도 파국을 막기위한 고도의 협상기술을 발휘하기는 커녕 ‘법을 안지키면 불법이야’, ’법 시행하면 우린 폐업한다’는 식의 최후카드만 고집한채 벼랑끝으로 갔습니다.
정부가 의사들의 극단적인 반발을 감지했다면 당연히 협상력을 발휘, 대안을 모색 했어야지요. 금융대란만 해도 금융종사자의 최대 관심사는 실직인만큼 실직 우려를 줄여주고 개혁을 추진하는 방법을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은 수 년전 구조조정을 하면서 AFL-CIO(미국노동 총동맹·산업별 조합회의)와 ‘직업의 안정성은 보장하되 연차적으로 각자의 노임은 줄여나가 산업경쟁력을 확보한다’는 합의를 끌어내 구조조정을 성공했습니다.
우리도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그런 노력을 해야합니다.
◆정부의 대처방안
▲이세중 = 극에 달한 집단이기주의를 통제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소관부처가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일선 부처가 나서질 않아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도 대통령,정치권,지역주민, 언론 등 주변 눈치를 보는데만 급급하다 때를 놓쳐버립니다.
이러다 보니 모든 현안이 대통령에게 미뤄지고 이익집단들도 대통령만 찾는 현실이 닥친겁니다. 대통령은 이보다 더 큰 국가운영의 일에 전념해야하고 이해조정과 갈등은 각 부처가 책임지고 맡아야합니다.
▲유장희 = 미국만 해도 클린턴대통령이 각종 스캔들로 탄핵직전까지 갔지만 국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주무장관과 백악관 비서진이 흔들림없이 국정을 맡아 제 할 일을 한 덕택입니다.
▲이세중 = 우리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챙기려 하기보다는 소관 업무는 해당장관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대통령은 외교 국방 정책조율 등 중요한 일에 전념하는 쪽으로 개선돼야합니다.
취임초와 달리 요즘은 청와대가 부처업무를 너무 챙기고 간섭하다 보니까 이해집단의 목소리도 ‘대통령이 직접 챙기라’는 쪽으로 나옵니다.
갈등이나 분규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 또한 일을 저질러놓고 사후에 수습하는 식입니다. 갈등과 분규를 사전 예방하는 능력이 시급합니다.
◆해결을 위한 조언
▲이세중 = 법의 권위나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국민 기억속에서 망각돼 가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국민이 법에 의한 해결방식을 불신하게 된 것은 정치권이 정치적 편의로 법을 적당히 바꾸고 집행해온 탓이 큽니다.
예를들면 여당은 원내 교섭단체 의석수를 20석으로 해놓은 국회법이 엄연히 있는데도 정치적 편의에 따라 이를 10석으로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입법과정이나 개정과정이 이처럼 편의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됩니다.
▲유장희 = 법을 엄정하고 공평하게 집행하는 분위기를 확립, 이익집단도 법에 따라 자기 주장을 펴는 풍토를 조성해야합니다. 정부가 ‘경제가 잘 된다’는 막연한 시그널로 국민이 현실을 혼돈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함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스케줄을 제시, 국민에게 차근차근 개혁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부는 일정대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모두에게 선이라는 소망스런 기대감을 줘야합니다.
사실 그동안 개혁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일정을 제시해 확신을 심어 준 것은 많지않았습니다. 지금도 늦지않았습니다.
금융대란만 해도 노조에 금융개혁 스케줄을 자세히 제시, 실직우려를 낮추고 전업에 대비한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사전조치 등이 필요합니다.
▲이세중 = 이해 당사자들이 모든 것을 집단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면 해결가능하다는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천지에 우리 사회만 유독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원시상태의 분쟁해결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갈등과 이해다툼을 집단의 힘이나 파괴행동으로 해결하려 들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힘에만 매달리다보면 그 결과는 결국은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자기 몫 만을 챙기기 위해 법과 질서를 무시하면 자신에게 더 큰 불이익이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쟁조절이나 갈등을 합리적 절차와 방법으로 해결해가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식의 해결은 자기도 사회도 공멸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유장희 = 당장 금융노조 파업이 임박하면서 파업을 안하는 은행으로 돈이 몰리고 있지않습니까. 시장의 힘은 극단적인 은행노조에 대해 준엄한 평가를 내릴 것 입니다.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금융시장이 어떤 인력을 요구하며 자신은 이에 적합한 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것입니다.
요즘 기술학원에 등록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사람중에 은행원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자기 능력을 계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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