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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크레디리요네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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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크레디리요네의 교훈

입력
200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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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크레디 리요네은행은 서구의 은행 흥망사에서 더할 수 없이 좋은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130여년에 걸친 장구한 나이테에, 그 영욕의 명암이 짜릿하기 때문이다. 1863년 리옹에서 보잘 것 없는 소매금융사로 출발한 크레디 리요네는 불과 수십년만에 중동 인도에까지 지점망을 뻗치는 세계 굴지의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2차대전 후 이른바 ‘트랑트 글로리어즈(영광의 30년)’시대를 맞아 욱일승천하는 기세가 극에 달한다.■프랑스의 간판은행, 유럽최대 금융기관 크레디 리요네는 그러나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1994년 끝내 속병이 터져 국제적 조명을 받는 뜨거운 스캔들이 전개된다. 98년 최종적으로 확인된 이 은행의 부실규모는 최소 200억달러 였다. 20세기, 아니 인류역사상 최대의 금융부실이었던 것이다. 이를 메우느라 쏟아부은 국민혈세와 재정부담 등 국가적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고, 자산매각 인원조정등 구조조정 작업이 지금도 진행형이다.

■크레디 리요네 스캔들과 관련해 세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첫째 내실 없는 외형 거대화 전략이 부실을 초래했다. 2차대전후 바짝 뒤쫓아 오는 독일의 도이체방크에 1등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라이벌 의식까지 작용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수습책마저 부실했다. 특히 눈가리고 아옹식의 진상축소와 처리과정의 불투명성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당국이 최초에 발표한 부실규모가 최종 확인액수의 20분의 1에 불과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최대의 주범은 정치인과 관료들이었다. 국영은행인 크레디 리요네를 부실기업에 사금고처럼 연결시켜준 것도, 이윽고 터진 부실을 은폐·축소하려 했던 것도 정치 엘리트들이었던 것이다. 부실처리 과정에서까지 정치적 입김과 압력·로비가 판을 쳤다. “프랑스의 모든 정치 엘리트들이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당시 서구 언론들은 꼬집었다. 은행 부실 처리와 구조조정이란 대명제를 앞둔 우리에게 크레디 리요네는 풍부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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