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남북은 바야흐로 냉전대결 구조를 해체하고 공존·공영의 협력 시대로 향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남북이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6·15 공동선언 제4항은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남북경협에 대한 인식은 정상회담 이전과 이후에 크게 달라진 것 같다. 흔히들 남북경협의 바람직한 모델이라면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의 결합을 제시한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것 같지만 그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남한 자본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원을 약탈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저임금을 노린 대북 경협사업은 별 메리트가 없을 뿐 아니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도 어긋난다. 남북경협은 단기적 이익추구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민족경제를 생각하는 장기적 비전에 의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흔히들 남북경협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긴장완화와 평화구축이야말로 남북경제관계의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남북이 과도하게 무장하고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경제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6·25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중이다). 남북경협이 어려운 북한을 돕고 남북 모두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라면 가장 확실한 남북경협은 군비감축이다.
남북은 그 동안 냉전 대결체제 하에서 과도한 국방비를 부담하였다. 정부의 ‘국방백서’에 의하면 1997년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48억 달러로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의 27%, 총예산의 52%에 달한다. 정부발표 북한의 군사비 지출이 과대 평가되었다는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군사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이 엄청난 군비 지출을 하는 것은 그들의 호전성 때문이 아니다. 북한은 주한 미군과 남한과의 군비 경쟁 열세에서 오는 군사적 불안감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1997년에 남한은 북한 군사비의 최소 3배 이상에 해당하는 147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하였다. 북한은 무기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117만 명의 병력(총인구의 약 5%)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1980년대 초에 남북한간 군사력의 우위가 역전되었고 오늘날 북한의 실질 군사력은 우리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비록 북한 정도는 아니지만 남한도 GDP의 3%, 정부 예산의 20%, 약 70만 병력(총인구의 약 1.6%)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우리는 안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군비팽창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열세라고 하나 북한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밀린 북한은 안보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핵무기 혹은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는 화학무기를개발하고자 하는 유혹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이 과도하게 무장한 상태에서 전쟁의 위협은 벗어날 수 없다.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남북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상호간에 국방비와 병력을 줄이는 군비감축에 합의한다면 그 이상 더 확실한 남북경협과 긴장완화 방안은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 구걸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탱크를 녹여 경의선을 깔자”는 말이 너무도 절실하게 들린다. 일년 국방비를 1%만 줄여도 끊어진 경의선을 잇고 시베리아로 달려갈 수 있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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