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최민수, 성유리, 엠티, 왕따, 모범생, 선생님, 호스티스…공통점은 모두 ‘묵찌빠’의 여러 ‘버전’이라는 것. 가위바위보의 손동작에 싣는 ‘묵찌빠묵찌빠’라는 음절은 삼행시의 ‘운(韻)’처럼 쓰이며 압축적인 제스처와 단어들로 갖가지 인물과 현상을 모사(模寫)한다.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버전까지 등장했다. ‘묵찌빠묵찌빠 묵은 김정일 (포도잔을 쥐고 배를 내밀며 웃는다) 원샷! ~찌도 김정일 나보고 글두만요. (오른쪽으로 삐딱한 몸동작에 손가락을 아래로 내밀며) 왜 은둔생활을 하는가? ~빠도 김정일(두 손을 목근처 높이에 두고 특유의 박수를 친다) 두손의 각도는 ↗↖를 유지).
원래의 묵찌빠는 ‘감자에(주먹) 싹이 나서(가위) 잎이 나서(보자기) 묵(주먹) _찌(가위)_ 빠(보자기)’로 이어지는 고전적인 놀이였다.
그러다 개그맨 지상열이 묵,찌,빠에 각각 가수 엄정화, 탤런트 오지명, 그리고 지상열 자신의 특징적인 모습을 덧붙여 선보인 이후 리드미컬한 ‘흉내내기’가 되어 세간을 풍미하게 된 것이다.
흉내내기는 언젠가부터 개그의 주류가 되어 왔다. 이제는 개그맨들의‘개인기’주종목이 된 것은 물론, 연예인 지망생의 필수적인 자질로 간주될 정도다. 개성만발 시대에 아이러니컬하게도 ‘흉내내기’가 유행하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용없이 범람했던 ‘튀는’문화에 대한 반동이다. 1990년대 초반 ‘난나(나는 나)족’‘고소영족’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담론이 휩쓸었지만, 결국 별다를 것 없는 허상으로 판명됐다. 그래서 오히려 21세기에는 ‘흉내내기’라는 고전적인 아이템이 또다른 개성으로 유행하는 것이다.
묵찌빠는 사람들 누구나 부담없이 할 수 있는 흉내내기다. 묵, 찌, 빠라는 음절은 다음에 이어질 말(또는 제스처)과 어떤 연관성도 없다. 또한 가위바위보의 손동작도 뒤의 내용과 완전 별개의 것이다.
그저 묵찌빠라는 형식으로 어떤 현상이나 인물의 단편을 재미있게 편집하여 흉내내는 게 중요할 뿐. 등을 두드리고 토하는 시늉을 하는 묵찌빠 ‘엠티’버전에서 볼수 있듯, ‘똑같이’흉내내는 것보다는 재치가 중요하다.
자유자재로 변용할 수 있는 부담없는 흉내내기, 그게 바로 묵찌빠가 아닐까.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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